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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8·15 해방의 증인- 최효실(창원시 의창구 소답동 구룡사)

  • 기사입력 : 2011-08-16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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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종로에 자유의 종이 울렸다. 아가야. 너도 나도 성도 이름도 바꿨구나. 해방 이듬해 국어책에 기록되었다. 36년간 우리말 우리글을 못 쓰고 일본 이름 야마요시 초지스를 쓰다가 우리 이름 최효실을 우리말로 적었다.

    8월 15일 일본 천왕이 무조건 항복해 해방이 됐다. 일제 때에는 산에 가서 소나무 속껍질을 깎아 먹고 쑥과 들에 있는 나물은 모조리 뜯어 먹었다. 농사지어 놓으면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전부 뺏어 가고 집안에 쇠붙이도 모조리 뺏어 갔다.

    청년들은 잡아다가 징용을 보냈다. 보리가 익어 가면 뜯어다가 볶아 돌에 갈아서 죽을 끓여 한 그릇씩 먹으면 꿀맛이었다.

    일본사람 밑에서 못 먹고 못 입었던 36년간은 너무나 힘들었다. 일본이 그렇게도 못 살게 굴던 36년간 그때를 우리들의 할아버지 아버지, 늙어 가는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서럽고 고통받던 그때를 요즘 사람들이 잘 알지 모르겠다.

    죽음의 쇠사슬 풀리고 해방 깃발이 날리던 날 삼천리 강산에 눈물이 샘솟고 삼천리 강산에 새봄이 오던 날, 아 동포여 이날을 잊으랴.

    우리의 생명을 구해준 그날은 8월 15일 음력 칠월 칠석 날. 우리들은 해방기념일에 학교에 가서 교장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며 “대한민국 만세”를 가슴 아프게 외치던 모습을 보았다. 잊지 못할 그날을 오늘도 되새겨 본다.

    최효실(창원시 의창구 소답동 구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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