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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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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어느 시골노인의 병원 상경기- 류동수(성균관대학교 삼성창원병원 비뇨기과교수)

고향환자 마지막까지 돌보는 것도 지방병원과 의사가 할 일

  • 기사입력 : 2011-12-07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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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 병원이라고는 모르고 살아온 노인이 있었다. 근래 들어 몸이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했지만 나이 탓이려니 하며 참고 지내다가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병원을 찾게 되었다. 의사를 만나 진찰을 받은 후 피를 몇 대롱씩이나 뽑히고 대소변을 받아주고 컴퓨터단층촬영까지 찍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결과를 보러 가니 ‘○○암’이 의심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속으로 걱정은 되지만 내색하지 않고 있는데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지식검색과 블로그를 찾아보고, 주위 사람들은 나름의 의학지식과 경험담들을 쏟아낸다. 그중에 귀가 솔깃해지는 비방이 있다고 해서 먹어보지만 효과는 없고 돈과 시간만 허비했다. 한편, 자식들은 서울 대형병원의 유명하다는 교수에게 진료를 받도록 해드리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다행히 평소 잘 관리해둔 인맥(?)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 하루라도 앞당겨 진료일자를 예약하게 된다.

    하지만 노인이 막상 서울로 가려고 하니 난감한 일이 생겼다. 그것은 자신의 병을 용케 찾아내 준 의사에게 염치없게도 다른 큰 병원으로 가야겠으니 진료의뢰서를 써 달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음에 이 병원을 다시 찾게 된다면 그 의사 얼굴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생각에 잠시 주저되지만, 자녀들의 효성 어린 성화에 눈 딱 감고 각종 서류와 검사결과들을 받아들고 상경길에 오른다. 물론 병 때문에 가는 것이지만 노인에게는 오랜만에 자식들과 귀여운 손주들을 만난다는 것이 오히려 더 가슴 설레는 일이리라.

    어쨌든 어렵사리 예약한 날짜에 병원에 와 보니 시골과는 비교하기도 어려운 엄청난 규모와 시설, 많은 사람들에 주눅이 든다. 진료실로 들어가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 같은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또 한참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치료와 수술을 받게 되었다.

    치료는 성공적으로 잘되었지만 경과를 보고 약도 타기 위해 몇 주 혹은 몇 개월마다 병원에 오시라고 한다. 하지만 노인 입장에서는 최소 네댓 시간 이상 걸리는 서울행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진료비는 물론이고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한 번 가면 며칠씩 머물러야 하는 자신들이 서울에서 팍팍한 살림을 살고 있는 자식과 며느리에게 짐이 되지나 않을까, 또 잊을 만하면 올라오는 노인네들을 귀찮아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고 눈치가 보인다.

    결국, 자녀들에게 이제 몸도 많이 나았고 서울까지 계속 오가기도 힘드니 고향에서 치료받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물론 자신을 처음 진료했던 의사를 다시 봐야 하는 면목 없는 상황에 부딪히게 되겠지만.

    이런 이야기로써 부모-자식 간의 사랑과 큰 병원으로 가시려는 분들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다. 오히려 부모나 가족이 병에 걸렸을 때 좋은 시설과 유능한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모시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자 우리 고유의 좋은 전통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고속철도의 개통으로 서울 오가기가 한층 빠르고 편리해졌고, 부자들은 엄청난 경비를 들여 외국까지 가서 치료를 받고 오는 시대임에랴.

    필자가 지방 종합병원의 햇병아리 의사로 진료를 막 시작했을 무렵, 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가겠다고 하면 자존심이 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방의 의료수준도 서울 못지않고 일부는 더 앞서는 분야도 있다. 필요하다면 경험 많고 실력 있는 의사가 서울에서 직접 내려와서 집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른 큰 병원으로 가야 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곳에서 잘 치료 받으시고 마음 편히 돌아오시라. 고향 환자들을 마지막까지 돌봐드리는 것 또한 지방병원과 의사의 존재 이유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류동수(성균관대학교 삼성창원병원 비뇨기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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