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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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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연잎 접듯- 유재영(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2-09-20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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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 구름 배밀이 훔쳐보다 문득 들킨



    절지동물 등 높인 이끼 삭은 작은 돌담



    벽오동 푸른 그림자 말똥처럼 누워 있다



    고요가 턱을 괴는 동남향 툇마루에



    먹 냄새 뒤끝 맑은 수월재 한나절은



    바람이 연잎을 접듯 내 생각도 반그늘



    차 한 잔 따라놓고 누군가 기다리다



    꽃씨가 날아가는 방향을 바라본다



    어쩌면 우리 먼 그때, 약속 같은 햇빛이며



    - <네 사람의 노래>에서

    ☞ 태풍의 위력은 대단했다. 넘어지고 부러지고 흔들리는 사이, 그저 모두가 제자리에서 잠잠해지기를 기도할 뿐.

    이를테면 태풍이 휩쓸고 간 뒤 찾아온 고요함이려나. ‘이끼 삭은 작은 돌담’아래 말똥처럼 누운 벽오동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 그랬을 것이다. ‘먹 냄새 뒤끝 맑은’ 바람 한줄기 코끝을 스치면 얽힌 생각이 스르르 풀리는.

    바람이 솔솔 분다. 서늘한 바람 불어 연잎 접듯 접힌 생각의 그늘. ‘차 한 잔 따라 놓고 누군가 기다리다’ 먼 그때 햇빛 같은 사람. 한 방향을 바라보며 약속한 사람. 가을 같은 사람이 있다. 감칠맛 나는 언어가 있고 편안하게 술술 읽히는 시가 있다.

    김진희(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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