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력- 이정환(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2-10-0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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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람에 기대어 비탈에 선 적이 있다
구름 깔고 앉아 멀리 흘러간 적이 있다
하늘빛
나비와 같이
스러져간 적이 있다
2
어느 뉘 눈빛 속에 숨어든 적이 있다
그 가슴 찢을 듯 가시 돋친 말끝에
어둠에
에워싸여서
옥죄인 적이 있다
3
더는 내딛지 못할 벼랑 끝에 섰을 때
바닥을 치며 올라오는 절망의 힘을 본다
내 안에
들끓는 마그마
용솟음칠 하늘 길을
이정환 시집 <분홍 물갈퀴>에서
☞ 한 개체로서 인간은 불완전하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절망하고 비탈에 선 자신을 돌아본다. 사랑과 증오, 슬픔과 고통, 외로움과 불화 속에 갈등하는 인간이여! 상처를 주고 또 상처 받으면서 아파하는 인간은 늘 불안하다. 너무나 인간적인, 고백성사와 같은 이 편력을 어이하리. 하늘빛 나비와 같이 스러지고, 어느 뉘 눈빛 속에 숨어들기도 하고, 어둠에 에워싸여서 옥죄인 적 있다’ 한다.
환한 웃음과 넘치는 에너지, 유머를 즐기던 시인의 얼굴 뒤에 가려진, 그 절망에 가슴이 저리다. 벼랑 끝에서 ‘바닥을 치며 올라’온 시인의 용기, 내면의 고통을 발설한 이 시에 무한 신뢰를 보내며. 그는 여전히 활활 타는 가을 산 같다.
김진희(시조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