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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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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손영희(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2-10-1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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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정원

    아궁이 불쏘시개 지천으로 널려있다

    구름이 새를 좇는 장복산 편백나무 숲

    아침녘 수제비 떠 넣은 무쇠 솥이 끓고 있다

    어머니 몸 그 몇 배 높이 쌓은 성채 하나

    살신(殺身)을 꿈꾸는 조붓한 저 등허리

    산 하나 통째로 이고 와 햇살로 부려놓는다

    잘 썩은 고요와 잘 마른 그늘이

    오늘도 까시래기 내 배냇잠 부풀린다

    큰 손이 떠먹여주는 밥맛이 뭉클하다

    손영희 시집 <불룩한 의자>에서



    ☞ ‘불쏘시개 지천으로 널린’ 그 정원은 너무 높게만 보였다. 갈래머리 여고시절, 장복산은 진해를 지켜주는 큰 바위 얼굴 같았다. 외부의 침입에도 시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요새(要塞) 같았다.

    오늘 ‘수제비 떠 넣은 무쇠 솥이 끓고 있는’ 정원을 오래도록 내려다본다. ‘잘 썩은 고요와 잘 마른 그늘’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어머니의 몸.

    당신의 그림자가 어룽거리는 이 가을, 갈 길을 잃고 내 배냇잠 부풀리네. 노을빛 ‘오래된 정원’에서 눈길이, 발길이 멈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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