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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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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로 쓴 편지- 박권숙(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2-11-2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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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슴에 눈물이 멍울져 있으시다면

    영축산 저 깊은 골짜기로 내려가

    인동의 그림자마저 추운 돌이 되십시오



    큰 절의 법고가 다 울려 버리고 나면

    저물어 저물어 철철 흘러 넘치는

    적막에 돌덩이 같은 귀를 씻어 보십시오



    빛이 눈물을 풀어 맑은 단청 입히는 돌

    소리가 바람을 깎아 당간 지주를 세우는 귀

    찬찬히 가슴을 열고 들여놓지 않겠습니까



    박권숙 시집 <그리운 간이역>에서

    ☞ 계절의 끝자락에서, 젖어드는 것이 그대 편지뿐이랴. 열심히 살아온 당신이여! 그대는 이제 한량없는 사랑과 그윽한 열매를 부려놓고 서정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새파랗게 더듬이 세우고 세력 뻗치던 넝쿨도 잘라내고 있다. 그뿐인가, 찬란한 영광은 하나 둘 가슴에서 눈에서 멀어지고 정열의 순간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나이테를 새기고 있다.

    시인에게 자연은 가슴속에 멍울져 있는 눈물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주는 존재다.‘철철 흘러 넘치는’ 것은 눈물이 아니라 적막이라는 것. 그 ‘적막에 돌덩이 같은 귀를 씻’는다면 가슴속 멍울진 눈물쯤이야 풀어져 맑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 영축산 깊은 골짜기, 자연의 빛과 소리를 들여놓는 일, ‘찬찬히 가슴을 열고’ 깊은 숨을 들이쉬는 일만 남았구나. 김진희(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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