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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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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숨겨진 왕가 이야기(역사도 몰랐던 조선왕실 가족사)

그 많던 궁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 기사입력 : 2013-02-22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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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에는 조선시대 궁궐이 많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은 익히 알려져 있는데 이현궁·어의궁·창의궁·운현궁은 뭘까. 또 경모궁·육상궁·연호궁·저경궁·대빈궁·선희궁과 계동궁·사동궁·창성궁·죽동궁은 또 뭔가.

    이 책은 서울시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하는 저자가 다소 생소한 ‘궁(宮)’이라는 문화재에 호기심을 갖고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저자는 지도 한 장을 들고 서울 시내에 있던 ‘왕가(王家)’를 구석구석 찾아다녔다. 대부분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아 저자는 철저한 답사와 수많은 자료를 찾아가며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왕가의 역사와 사연을 샅샅이 조사했다.

    궁(宮)은 왕족이 사용하는 장소로 왕가, 궁집, 궁가, 궁방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기능에 따라 잠저, 사당, 제택으로 나눌 수 있다.

    잠저는 왕의 서열이 아닌 왕자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을 말한다. 만약 세자가 아닌 왕자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궁궐 밖에서 살다가 궁궐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때 왕이 살던 옛 집을 ‘잠저’라 한다. 세조가 혼인해 살던 영희전, 광해군이 살던 이현궁, 인조가 살았고 효종이 태어나 살던 어의궁, 영조가 살던 창의궁, 고종이 태어나 살던 운현궁이 잠저에 속한다.

    또 왕비가 아닌 후궁에게서 태어난 왕자가 왕이 될 경우 왕의 어머니는 왕비가 아니므로 죽은 후에 신주를 종묘에 모시지 못한다. 또 왕위 계승자가 아닌 왕자가 왕이 되었을 때 그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왕의 어머니와 아버지, 즉 사친(私親)을 모시는 사당을 궁이라 불렀다.

    혼기가 차서 출가한 왕의 자녀들인 왕자가 살던 집과 공주나 옹주가 혼인 후 남편과 살던 집도 ‘궁’이라 불렀다.

    이현궁(梨峴宮)은 한성부 동부 연화방에 있던 광해군의 잠저로, 광해군이 유자신의 딸과 혼인해 살던 저택이다. 그리고 선조 사후 왕위에 오르니 광해군이 살던 이현의 옛집은 왕의 잠저로 ‘이현궁’이 되었다.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의 소유이기도 했던 이현궁은 현재 종로플레이스, 인의빌딩 등이 들어서 있다. - ‘제1장 왕이 살다 ‘이현궁’ 중에서 p. 33

    병이 잦았던 세종은 영응대군의 집 동별궁에서 눈을 감았고, 고종과 명성황후는 운현궁에서 가례를 치렀고, 흥선대원군은 이곳에서 섭정하며 나랏일을 보았으며, 임오군란 때 살해당한 민겸호가 살던 집 용동궁은 독일인 정치 고문 묄렌도르프가 양옥으로 개조해 살았고, 명성황후의 오빠 민승호 일가는 죽동궁에서 폭탄 테러로 몰살당했다.

    고종은 1904년 궁중에 황실제도정리국을 설치하여 황실의 재산을 정리하기 시작해, 1907년에는 대부분의 황실 재산이 국유화되었다. 더불어 한양의 궁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세조의 잠저였던 영희전에는 서울중부경찰서, 인조와 효종의 잠저인 어의궁에는 롯데시네마 피카디리극장, 사도세자의 사당이었던 경모궁에는 서울대학의학박물관, 선조와 인빈 김씨의 소생 정원군이 살고 인빈 김씨의 사당이었던 저경궁에는 한국은행(화폐금융박물관), 세종대왕이 눈을 감은 동별궁에는 풍문여자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세종의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파의 종가는 고급 한정식집 필경재가 되었다. 덕흥대원군의 궁가이자 선조의 잠저인 도정궁의 사랑채 경원당은 건국대학교 내에 있다.

    이순자 저, 평단문화사, 1만5000원.


    김용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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