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5일 (수)
전체메뉴

의자 위의 흰눈- 유홍준(시인)

  • 기사입력 : 2013-04-11 01:00:00
  •   



  • 간밤에

    마당에 내놓은 의자 위에 흰 눈이 소복이 내렸다

    가장 멀고 먼 우주에서 내려와 피곤한 눈 같았다, 쉬었다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지친 눈 같았다

    창문에 매달려 한나절,

    성에 지우고 나는 의자 위에 흰 눈이 쉬었다 가는 것 바라보았다

    아직도 더 가야 할 곳이 있다고, 아직도 더 가야 한다고

    햇살이 퍼지자

    멀고 먼 곳에서 온 흰 눈이 의자 위에 잠시 앉았다 쉬어가는 것

    붙잡을 수 없었다

    -계간 <시와표현> 2013. 봄호


    ☞ 어제 황매산에 다녀왔다. 4월도 한참 지났는데 봄눈이 쌓여 겨울의 끄트머리를 붙들고 있었다. 머지않아 ‘눈’ 대신 철쭉비가 내릴 거다.

    유홍준 시인은 <이병주문학관>에 근무하고 있다. 요즘 북천을 소재로 한 연작시를 많이 발표하고 있다. ‘눈’의 관찰에서 비롯된 직관이 뚜렷하다. 시인은 창밖에 눈 내리는 것 바라보다가 ‘의자’에 내려앉는 ‘눈’이 ‘가장 멀고 먼 우주에서 내려와 피곤한 눈 같았다’고 말한다.

    ‘의자 위에 흰 눈이 쉬었다 가는 것 바라보았다.’에서 ‘쉬어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새삼 곱씹게 된다.

    인생도 잠시 왔다가 가는 건데 왜 이리 시간은 빨리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세월은 쉬어가는 ‘눈’과 같아서 한 번 떠나온 곳은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명예와 권력도 잠시 머물다가 가는 것…. 박우담(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