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11일 (토)
전체메뉴

[열린포럼] ‘먹방’은 너무 힘이 세다- 조민(시인)

  • 기사입력 : 2013-04-16 01:00:00
  •   



  • 먹방이 대세다. ‘먹방’은 먹는 방송. BJ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토크하거나 연예인들과 유명인들이 맛있게 먹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최고의 음식과 요리를 추천하는 음식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이다. 요즈음엔 이 채널 저 채널 할 것 없이 난리다. 어디서 그렇게 특이하고 기름진 먹거리를 찾아내는지. 이 세상에 먹거리가 아닌 게 없다. 볼 때마다 침이 고인다.

    먹는 모습도 가지각색이다. 손으로 산낙지를 집어먹는 사람, 빨간 양념이 범벅이 된 입으로 족발을 신나게 뜯는 사람, 주먹보다 더 큰 쌈밥을 씹으면서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람. 더 게걸스럽게 더 야만적으로 먹자, 먹자, 먹어보자꾸나. 신이 났다. 먹는 데 정신이 팔려서 카메라도 시청자도 다 잊어버린 것 같다.

    바야흐로 이젠 먹는 것을 자랑하는 시대가 되었다. 다들 한 번쯤은 유명한 맛집 사이트를 검색해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잠시 유명한 맛집 블로거의 규칙을 엿보자. 전문적인 푸드스타일리스트와 이름난 셰프가 권하는 메뉴는 반드시 먹어본다. 맛짱으로 소문난 집을 찾아가서 인증 샷을 찍어 본다. 먹기 전에 반드시 인증 샷을 날려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싸이질이나 블로깅을 한다. 유기농과 친환경 라벨 확인은 필수조건 절대조건이다. 맛집을 소개하는 블로그와 사이트, 앱을 다운 받아 빠른 길 찾기로 활용한다.

    어쨌든 식욕은 인간의 본성 중 제일 힘이 세다. 모두들 음식 앞에서는 염치도 체면도 잊어버린다. 본성에만 충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음식의 힘! 식욕의 힘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된장찌개와 녹차삼겹살 냄새 앞에서는 누구든 식신 모드가 되어버린다. 먹는 것에 충실해진다. 진지해진다. 음식 앞에서는 누구나 무릎을 꿇는 것이다.

    칼만도 그렇고 그의 아내 지젤라도 그렇다. 식욕과 식탐의 화신이다. 칼만은 ‘택시더미아’(Taxidermia, 2006. 기요로기 폴피 감독, 삼대(성욕, 식욕, 영원)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만든 영화)에 나오는 ‘푸드파이터’(foodfighter)다. 엄청난 식욕과 식탐의 DNA로서 돼지꼬리를 달고 태어난다. 물론 태어나자마자 그 돼지꼬리는 잘려나간다. 돼지처럼. 식용 돼지 새끼들도 태어나자마자 꼬리가 잘린다. 서로 공격하지 말라고. 돼지고기에 상처가 나면 안 되니까.

    칼만은 세계 챔피언이 되어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이 삶의 목표다. 정말 많이 먹고 정말 빨리 먹는다. 상상해 보라. 200kg에 육박하는 부부가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는 장면을. 식욕을 먹고 식욕을 토한다. 식욕은 멈출 줄을 모른다. 칼만은 그칠 줄 모르는 식욕에 대한 자부심으로 적게 먹는 아들을 모욕하고 무시한다. 칼만은 먹으면서 늙어간다. 거대한 소파에 앉은 채로 대소변을 누면서도 끊임없이 먹고 끊임없이 욕을 한다. 먹기만 하는 늙은 고기가 되어서. 그러다가 칼만은 고양이의 먹이가 된다. 가두어 키우던 고양이 세 마리가 탈출하여 칼만의 내장을 뜯어 먹는 것이다. 누군가의 식욕은 반드시 누군가의 식욕이 된다. 먹다와 먹히다는 동의어다.

    먹방도 멈추지 않는다. 오지도 가고 정글도 간다. 깊은 바닷속도 가고 깊은 산속도 간다. 새벽 시간도 심야 시간도 가리지 않는다. 먹방도 힘이 세다. 먹방이 시키는 대로 하면 앞으로 아플 일도 죽을 일도 없을 것 같다. 현미와 수수쌀만 먹으면 당뇨는 걱정 없고, 꽃게탕은 갱년기도 노안도 막아준단다. 꽃게만 죽어난다. 오소리 기름은 잔주름 제거와 노화 방지에 좋고 오소리 쓸개는 간에만 좋은 게 아니라 보양식으로도 으뜸이란다. 오소리만 자꾸 죽으면 된다. 토끼 간과 쓸개는 빈혈에 좋단다. 토끼만 자꾸 또 죽으면 된다. 당나귀 머리와 등뼈를 푹 삶은 국물은 양기 회복에 으뜸이란다. 앞으로 당나귀는 얼마나 죽어야 할까. 아, 그럼 소는? 돼지는? 말은? 개는? 이제 그만 하자, 먹방. 이제 그만 보자, 먹방. 웰빙이 힐링에 먹혔듯이 곧 먹방도 누군가에 먹힐 날이 올 것이다. 이제 그만 먹고, 이제 그만 먹히자. 제발!

    조민(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