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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김형근 미술관’에 대한 도 도시계획위 결과를 보며- 이달균(시인)

  • 기사입력 : 2013-05-08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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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년 통영에서 태어난 한 화가가 있다. 1970년 국전에서 ‘과녁’이라는 작품이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일약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과 미국 등지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였고, 국내외 유명 미술관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에 잇따라 초대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서게 되었다. 국전 심사위원과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수도여자사범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는 동안에도 고향 통영사랑을 실천하였으며 지역과 중앙화단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바로 김형근 화백이다. 생존 화가 중에서 가장 그림값이 비싼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모교인 통영시 산양초등학교를 방문하여 ‘나의 삶과 예술’이란 주제의 강의를 하면서 어린이들에게 손수 그림 지도를 해 주었고, 실거래 가격이 상당한 판화 ‘가을의 사랑’(6호)을 기증하기도 했다.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노 화가는 이제 귀거래사를 준비하고 있다. 20대 청년작가 시절 그는 남망산 아래 작은 집에서 살았다. 남망산은 통영예술과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다. 유치환, 김상옥 시비와 국내외 유명 조각가들의 조각공원이 있고,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 영화 촬영지이며 통영시민문화회관이 있다. 이 공원 아래 그의 옛집은 지금도 그대로 있다.

    팔순이 넘은 은빛 노화가는 이곳에다 평생의 화업을 정리할 ‘김형근 미술관’을 짓고 싶어 한다. 요즘 지자체에서는 얼마간의 성취를 이룬 이라면 00미술관, 00기념관을 다투어 지어 문화의 과잉이란 말을 듣기도 한다. 실제 김 화백에게도 그런 제의가 오고 있지만 그는 단호히 내 고향, 내 집에, 내 돈으로, 내 그림을 걸어 후생의 밀알이 되겠다고 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런데 예상치 않은 문제가 생겼다. 지난 3월 22일 경상남도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이곳에 미술관을 지으면 바다조망을 가린다”는 이유로 미술관 건립을 부결시켜버린 것이다. 그의 집터가 위치한 지역은 건폐율 20%를 적용받는 자연녹지지역인 반면 집터와 인접한 주거지역은 대지면적의 60%까지 건축행위를 할 수 있다. 김 화백의 바람을 잘 아는 통영시 관계자는 “건폐율 20%의 규제를 받는 자연녹지지역 안에서는 제대로 된 미술관을 지을 수 없으니 인접 지역처럼 60%의 건축행위를 할 수 있는 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을 해 달라”고 호소했으나 결과는 부결이었다.

    노 화가는 가급적 바다 조망을 해치지 않고 심미안을 발휘하여 자연과 주변 집들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소박하고 아름답게 짓겠다고 말해 왔다. 이런 마지막 꿈을 위해 서울집도 처분하고 그동안 그린 그림을 싣고 고향에 돌아오고자 하였으나 그 꿈은 심각한 상처를 입고 말았다. 위원들은 현장을 답사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작가를 만나 설계계획을 듣거나 운영방법 등을 상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물론 도시계획위원들은 원칙과 규정에 따랐겠지만 그래도 문화예술도시 통영시의 특성을 고려하여 긍정적인 마인드로 접근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크다. “법대로”를 고집하면 굳이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통영시가 문화예술 시책에 따라 용역을 완료하고, 통영시의회 역시 흔쾌히 동의하여 상정한 것인데 말이다.

    이 미술관이 건립되면 통영의 문화관광 자원인 ‘청마문학관’, ‘김춘수 유품전시관’, ‘옻칠미술관’, ‘전혁림 미술관’, ‘김용식·용익 형제기념관’, ‘박경리 기념관’, 완공 단계에 이른 ‘통영국제음악당’, 개관을 앞둔 ‘통영시립박물관’ 등과 연계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곳 지역민들은 ‘김형근 미술관’과 통영예술의 발자취가 오롯이 살아있는 남망산 공원을 새로운 문화벨트로 엮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경상남도는 다시 한 번 이 건에 대한 심사숙고가 필요하다. 물론 통영시와 시민들은 이런 결과에 낙담하여 ‘김형근 미술관’을 백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첨단의 시대일수록 강조되는 것이 문화 마인드인데 경상남도 도시계획위원회의 결과를 보면 착잡한 생각이 든다.

    이달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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