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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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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의 눈꽃*- 이월춘

  • 기사입력 : 2013-07-04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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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훌쩍 서른 해 저쪽

    말복과 입추 어름이었지 아마

    칠불사 계곡 대궐터 민박집 툇마루에 앉아

    세한(歲寒)의 마당을 거닐며 추사를 만나고 있었지

    드럼통 난로가 사람 온기 붉은 서정으로

    한촌의 적막과 그리움의 책갈피를 넘길 때

    노란 꽃술의 발자국 눈꽃이 피어났어

    혜자보다 혜자 엄마의 사연은 인지상정일까

    부뚜막에 앉아 부추전을 부치는 안주인의 등에

    여름 나는 동안 겨울 그립고

    겨울 나는 동안 여름 그립다는

    서늘한 생의 사연이 따뜻하네그려

    *혜자의 눈꽃 : 천승세의 소설

    - <경남시학> 4호(2013년)

    ☞ 한여름에 세한의 마당을 생각하면 조금 시원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얀 눈이 가득한 마당, 장독대, 고드름, 얼음꽃 핀 창문 등을 생각하면 한겨울의 손 시림마저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시인은 칠불사를 여행하며 추사를 떠올리고, 천승세의 소설 <혜자의 눈꽃>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결핵과 정신질환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서른 살 정도의 여인. 죽음을 앞두고 한적한 시골마을에 살고 있으려니 사람이 그리워졌겠지요.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이웃의 낯선 남자를 찾아갔는데 기운이 없어 그런지 군데군데 오줌을 흘립니다. 그때마다 혜자는 엄마의 노란 오줌자국 주위에 발자국을 찍어 꽃잎들을 만듭니다. 비루할 수 있는 삶의 순간에 피어나는 노란 꽃술의 눈꽃들, 그것은 혜자의 발바닥에서 탄생하는 따뜻한 아름다움의 극치였습니다.

    ‘여름 나는 동안 겨울 그립고/ 겨울 나는 동안 여름 그립다는/ 서늘한 생의 사연’을 떠올리며, 시인은 지금 우리의 마음을 세한의 마당으로 몰아갑니다. 눈 발자국을 찍으며 세한의 마당을 거닐게 합니다. 노란 꽃술의 눈꽃을 생각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조금은 시원해졌습니다. - 이주언(시인)



    ※ 창원의 이주언 시인이 ‘시가 있는 간이역’ 새로운 역장을 맡았습니다. 이 시인은 창원 출신으로 2008년 ‘시에’를 통해 등단했으며, 지난해 첫 시집 ‘꽃잎고래’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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