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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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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굽- 허형만

  • 기사입력 : 2013-07-11 0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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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봐 더 겁났다

    구두 뒷굽을 새로 갈 때마다 나는

    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 게 아닌지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한사코 한쪽으로만 비스듬히 닳아 기울어가는

    그 이유가 그지없이 궁금했다 - <불교문예> 2013년 여름호


    ☞ 낡은 신발은 한 발 한 발 디뎌온 주인의 삶을 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두 수선공은 신발을 보며 마치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듯 삶의 궤적을 진단합니다. 그 결과 한쪽으로 기울어진 삶을 살았다는 진단이 나올까봐 시인은 두렵습니다.

    우리는 항상 자신이 똑바로 걸으며 산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신발은 왜 한쪽으로 닳을까요? 시인은 신발 뒷굽과 삶의 궤적이 서로 관련 있는 게 아닐까, 의문을 품습니다. 순수해야 할 영혼이 중심 잡지 못하고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좌빨’이든 ‘우빨’이든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삶은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 반쪽짜리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또 ‘좌빨’이나 ‘우빨’이라는 말은 반대편 사람들에게 적의의 감정을 품게 합니다. 시인은 둘 중 어느 한 곳에 소속되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런 편가름이 싫습니다. 농부의 작업화, 직장인의 구두, 어르신의 단화, 운동화, 슬리퍼 등 다양한 신발들은 누군가의 인생을 기록하는 블랙박스처럼 보입니다. 똑바로 걷는 일과 중심을 잃지 않고 사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이 시는 어쩌면 부끄러운 족적이 될 수도 있는 신발 뒷굽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이주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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