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가1- 복효근
- 기사입력 : 2013-08-01 11:00:00
-
생가1
옛날에 임신한 노루를 잡아먹은 두 친구가
같은 무렵 각각 아들을 낳았는데
두 아이 모두 벙어리가 되더란다
별 아래 어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
환갑을 넘긴 그 아이들 아직도 한 동네 살고 있어
축생과 인간세를 잇는
전생과 후생을 잇는
보이진 않지만 있기는 있는
질기고 질긴 연기의 끈이 만져지는 이야기
교룡산과 풍악산 그 무연한 산을
구름이 다리를 놓듯 이어주는 동네
밤이면 노루 눈망울 같은 별들이 또랑또랑 돋아서
전생의 일이 궁금하면 이생에 받은 것 보면 되고
후생의 일이 궁금하면 지금 이생에서 지은 것 보면 된다 하시던
그 말씀 아직도 자분자분 들려주는
구름다리(雲橋) 옛 467번지
- <시인동네> 2013년 여름호
☞ ‘전설의 고향’을 방불케 하는 시입니다. ‘임신한 노루’를 잡아먹지 말라는 금언은 잉태한 생명을 귀히 여겨야 한다는 가르침을 줍니다. 그러나 터부를 지키지 않았던 사람들. 그로 인해 천형을 받고 태어난 자식들. ‘환갑을 넘긴 그 아이들’이 실제로 시인의 고향 남원시 운교리에 살고 있다니, 영(靈)의 세계가 증명된 듯 소름이 살짝 돋습니다.
우리는 대대로 전해오는 금기사항이 모두 미신이라며 비웃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밝힐 수 없는 영(靈)의 세계에 대해 두려움을 품고 있습니다. ‘보이진 않지만 있기는 있는’, ‘별 아래 어머니가 들려주신’ 그 영혼의 세계는 윤회의 논리로 다시 태어납니다. ‘후생의 일이 궁금하면 지금 이생에서 지은 것 보면 된다’는 말씀, ‘노루 눈망울 같은 별들이 또랑또랑 돋아서’ 전해줍니다.
남은 인생을 더욱 조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아직까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시인의 고향이 신화 속 별처럼 희미하게 빛납니다. 이주언 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