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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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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 성선경

  • 기사입력 : 2013-08-2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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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도 이제

    한창때는 지났나 봅니다.

    내 영혼 어디선가

    설렁설렁 바람이 불고

    내 무릎 아래에서

    알기는 칠월의 귀뚜라미라고

    말끝마다 사랑 사랑 합니다.



    나는 이제 막 고개 위를 올라섰는데

    속으로 굽어져 이제 찬바람이 이네요.



    누가 이런 변화를 알고 이름 지었을까요.

    불혹(不惑),

    나는 그쯤에서 흔들리기 시작했으니까요.

    - 시집 <몽유도원을 사다> 중에서

    ☞ 인생을 사계절로 본다면 젊음이 한창일 때는 여름일 겁니다. 그러다 ‘처서’쯤 되면 열정으로 가득하고 기세등등하던 열기가 한풀 꺾이게 되지요. 제 몸을 초록으로 덧칠하던 식물도 생기를 잃고 주름지기 시작합니다.

    시인은 ‘처서’라는 절기를 인생의 사십 세쯤으로 생각합니다. 그때는 ‘영혼 어디선가/ 설렁설렁 바람이’ 분다고 하네요. 생을 팔십으로 본다면 사십은 정점이자 내리막의 시작이 되겠지요. ‘이제 막 고개 위를 올라섰는데/ 속으로 굽어’지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무릎 아래에서/ 알기는’ 것도 있습니다. 누군가 시인의 것을 조금씩 빼가는 모양입니다. 그들이 자식일 수도 있을 겁니다.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살기보다는 누군가를 챙겨줘야 할 때. 음력 칠월의 귀뚜라미처럼 가족은 ‘사랑 사랑’이라는 말로 시인을 포섭해옵니다.

    인생의 내리막이 열리자 ‘흔들리기 시작’하는 시인, 그래서 ‘불혹’이란 단어를 꽉 붙잡고 싶어합니다.

    불혹의 때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흔들림이 크기 때문에 불혹을 의식한다고 전합니다. 시인처럼, 가을이 되면 남성들의 마음이 더 많이 흔들린다지요. 아침저녁으로 찬바람 일기 시작하는 처서. 이제 우리의 영혼에도 가끔씩 찬바람이 불 것 같습니다. 이주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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