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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6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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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최승자

  • 기사입력 : 2013-08-2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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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부- 최승자


    나더러, 안녕하냐고요?

    그러엄, 안녕하죠.

    내 하루의 밥상은

    언젠가 당신이 했던 말 한마디로 진수성찬이 되고요,

    내 한 해의 의상은

    당신이 보내주는 한 번의 미소로 충분하고요,

    전 지금 부엌에서 당근을 씻고 있거든요.

    세계의 모든 당근들에 대해

    시를 쓸까 말까 생각하는 중이에요.

    우연이 가장 훌륭한 선택이 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다시 한 번 물어주시겠어요,

    나더러 안녕하냐고?



    그러엄, 안녕하죠.



    똑딱똑딱 일사불란하게

    세계의 모든 시계들이 함께 가고 있잖아요?

    - 시집 <연인들> 중에서


    ☞ 안부! 성묘할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조상께도 연로하신 부모님께도 안부를 여쭤야 할 때입니다. 이 시를 보니 제 안에 엎드린 자신에게도 안부를 묻고 싶네요. ‘당신이 했던 말 한마디로 진수성찬이 되고’ ‘한 번의 미소로’ ‘한 해의 의상’이 해결된다는 시인처럼,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쏠리는 마음을 들여다봅니다. 이것은 자식이 바쁠세라 전화만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 같기도 합니다.

    우연! 몇 번의 우연이 인생을 좌우한다지요. 고르고 고른 것보다 우연히 내게 온 것들, 어쩌면 그게 운명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부엌에서 당근을 씻고’ 있기 때문에 우연히 ‘세상의 모든 당근들에 대해’ 시를 쓸 수 있는 것처럼, 오늘 우리가 우연히 만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또다시 안부! 쳇바퀴 도는 다람쥐 같은 일상입니다.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세계의 모든 시계들이 함께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엄, 안녕하죠.’ 라는 시인의 대답에는 빈정거림이 느껴집니다. 체념의 소리로 들립니다. 안부는 형식적 인사에 불과한 것, 찬바람 이는 허전함은 스스로 해결할 것, 이런 의미일까요? 우리 모두 겉으로는 무사해 보이는군요. 이주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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