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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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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우리 동네 국숫집과 가을 맛- 조문기(경남신용보증재단 이사장)

가족 밥상 차리듯 정성껏 조리한 음식으로 사랑받는 식당 많아지길

  • 기사입력 : 2013-10-0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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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은 맛있다. 햅쌀로 지은 밥, 살이 오른 전어, 그리고 사과와 배 같은 햇과일 등 풍성한 먹거리는 지난여름 불볕더위로 잃어버린 우리 입맛을 되살려준다. 몸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먹어야 하지만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살아가는 듯하다. 맛난 음식을 마주하면 아련한 추억도 떠오른다. 기온이 뚝 떨어진 요즘 어머니가 만들어 준 따끈한 칼국수가 생각난다. 밀가루에 날콩가루를 섞어 반죽해 홍두깨로 민 다음 가늘게 썰어 칼국수를 끓여 내셨다. 멸치국물에 듬성듬성 썬 감자를 넣고 한 번 끓인 후 송송 썬 애호박을 넣어 한소끔 끓이면 구수한 경상도 스타일의 손칼국수다. 여기에 풋고추를 넣은 양념장을 듬뿍 얹어 먹으면 세상 여느 요리 부럽지 않았다.

    이상국 시인은 ‘국수가 먹고 싶다’에서 고단한 우리 삶에 밴 따뜻한 국수 맛을 노래했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우리 동네에는 내 입맛에 딱 맞는 국숫집이 있다. 통영산 신선한 멸치와 디포리를 듬뿍 넣고 매일 아침 국물을 우려내는데 그 맛이 시원하고도 구수하다. 이 국물을 숙성된 반죽에서 바로 뽑아낸 쫄깃한 면발과 함께 정갈한 도자기 사발에 담아내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상호도 진한 육수에다 정(情)을 더한 ‘진정(情)한 국수’다.

    창원에는 맛 좋고 착한 국숫집이 여럿 있다. 배고픈 서러움을 누구도 겪지 않았으면 하는 착한 마음으로 운영하는 내동의 ‘호호국수’. 좋은 멸치로만 우려낸 육수와 넉넉한 양에다 가격도 3500원이다. 마산회원구 양덕동의 ‘천냥국수’도 있다. 구포 국수 면발에 통영 멸치 국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에게 천 원 받고 내어 놓는다. 반송시장 안에는 구수한 멸치국물 냄새 가득한 칼국수 골목이 손님을 끈다. 10여 곳의 칼국숫집이 비슷한 조리법으로 국수를 끓인다. 준비된 밀가루 반죽을 즉석에서 기계로 가락을 뽑아 바로 삶은 후 멸치육수를 붓는데, 애호박 볶음 등 고명을 얹으면 따뜻하고 정이 듬뿍 담긴 칼국수 한 그릇이 완성된다.

    우리 주변에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좋은 식당이 많은 반면, 또한 집세와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겨워 장사를 포기하는 식당도 많다. 음식점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개업했다가 실패하는 것이다. 지난 9월 16일자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 신문에 한국의 과다한 식당 개업 붐을 다룬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는 KB금융그룹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매년 7400개의 치킨집이 새로이 문을 여는 반면, 기존 치킨집 중 5000개는 파산한다고 밝혔다. 절반에 가까운 치킨집이 3년 내 문을 닫고 10년 안에 80%가 폐업한다는 통계도 실렸다. 한국외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인구 1000명당 12개의 음식점이 있다고 한다. 일본보다 2배 이상 많고 미국보다는 6배나 많아 이미 포화상태다.

    일본 요식업계의 전설인 우노 다카시는 그의 책 ‘장사의 신’에서 음식점의 성공 비결은 “한 번 온 손님을 기쁘게 해주고 즐거운 마음으로 돌아가 계속 다시 오도록 ‘정성’을 다하는 것”이라는 평범한 주장을 펼쳤다. 주변에 음식점은 넘쳐나지만 정작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식당은 드물다. 이젠 식당도 단순한 생계형을 넘어 경쟁력을 갖춘 전문 가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최고의 건강 밥상을 차린다는 각오와 자기만의 비결이 없이는 고객의 마음을 붙들기가 쉽지 않다.

    따뜻한 국수가 그리워지는 이 가을. 우리 음식업계에도 내 가족에게 밥상을 차리듯 정성껏 조리한 음식으로 사랑받는 식당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이는 건강하고 신뢰받는 선진 음식문화의 정착과 함께 나아가 서비스산업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조문기 경남신용보증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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