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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술 취한 연말, 누가 내 생명을 지켜줄 것인가?- 김병기(김해중부경찰서 유치관리팀장)

  • 기사입력 : 2013-12-0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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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년 전 연말 이맘때쯤 황당한 교통사고를 처리했다. 새벽 1시경 졸린 눈을 비비며 그날따라 연이어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를 처리하고 있는데 파출소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현장에 가보니 신고 운전자의 승용차 약 4m 뒤쪽에 건장한 체격의 30대 남자가 피를 많이 흘리며 숨져 있었다. 신고 운전자는 운행 도중 뭔가 덜컹하는 느낌에 후사경을 보니 검은 물체가 보여 승용차를 세우게 되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른다고 했다.

    사고 현장은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 교차로였다. 한쪽은 규모가 큰 교회가 있어 평소 보행자 왕래가 잦은 곳이지만 차가운 날씨에다 늦은 시간이라 목격자가 없었고 감시카메라 또한 없었다. 승용차로부터 사고 피해자가 있는 곳까지 이어진 혈흔을 감안해 교통사고로 수사하게 됐다. 신고 운전자는 진해에서 대리운전을 해 오던 길이었다며 사고를 극구 부인했다. 승용차도 충격 흔적이 없지만 일단 소유자의 양해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하는 한편, 피해자의 상태를 살폈다.

    착용한 청바지와 혁대가 뭔가에 닿은 상태로 엉덩이 살점 훼손에다 뼈가 드러날 정도였으나 얼굴 등에는 외상도 없는 상태라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게 됐다.

    부검 결과 목 가득히 음식물로 꽉 막힌 상태의 질식사가 직접사인으로 밝혀졌고, 이 사건 신고 접수 전 사고현장에서 약 300m 떨어진 차도 한복판에 술 취해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시민이 신고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날 술을 유난히 좋아했던 피해자가 친구들과 막걸리와 소주를 마신 뒤 다시 편의점에서 소주 1병을 구입해 차도 한복판을 안방으로 착각해 앉아 한손으로 담배를 피우며 병째 술을 마셨다. 최초 신고자가 112에 신고를 했으나 이곳을 지나던 승용차가 미처 보지 못하고 피해자를 앞 범퍼로 충격한 것이다. 피해자는 앉은 자세로 넘어지며 혁대가 앞 범퍼 밑 고리에 걸려 승용차 밑에 매달린 채 약 300m를 끌려가면서 먹은 음식물이 목으로 솟구쳐 올랐고, 혁대가 끊어지자 도로로 떨어진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차도에서 차에 치여 사망한 피해자가 508명이고 부상자는 1만4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 사고는 시야 확보가 어려운 밤 시간대에 주로 발생하고 피해자가 술 취해 보도가 아닌 차도에서 잠을 자는 등 부주의로 발생한 사고와 운전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가 대부분이다. 술을 좋아하는 이웃들에게 소중한 내 생명을 누가 과연 지켜 줄 것인가를 한 번쯤 생각하게 한다. 연말이 되면 우리 사회는 가히 술과의 전쟁이라 할 만하다. 무슨 모임이 그리 연말에 많은지?

    술을 마실 기회는 많고 이를 거절할 명분 또한 약하다. 평소 술 권하는 관습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술 취해 벌어질 폐단을 상기하고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폭탄주 한두 잔을 마시지 못하면 괜히 무시당하는 것 같고 권하는 술잔을 거두면 좀스러워진다는 생각에 애써 다진 각오를 허물고 호기를 부리기도 한다.

    이 연말 진정 자기를 아낀다면 남들이 지켜주지 못하는 내 생명을 내가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김병기 김해중부경찰서 유치관리팀장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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