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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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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사고에서 사건이 되는 순간- 윤봉한(윤봉한치과의원 원장)

  • 기사입력 : 2014-05-1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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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교차로에서 사고가 났다. 좌회전 전용차선인 1차로의 차가 엉뚱하게 직진을 하면서 2차로에서 좌회전하던 차와 부딪힌 것이다. 2차로의 차는 아내가 운전하고 있었다. 퇴근해서 집에 와보니 다친 곳은 없지만 여전히 화가 난 얼굴이었다. 1차로 운전자는 미안하다면서 사과를 했는데도 사고 처리를 돕던 보험회사 직원이 좌회전 허용 차선인 2차로에서 정상적으로 좌회전한 아내에게도 일부 과실이 있다며 부아를 돋운 탓이다.

    나도 잘못했다. 교통법규가 원래 그렇잖아, 바퀴만 굴렀다 하면 쌍방의 책임이라고, 당신 책임도 있는 거야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 말은 말았어야 했다. 20년 넘게 운전을 한 아내도 알고 있을 터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필요한 것은 법조문에 새겨진 문구가 아니었다. 아내가 내게 그러듯이 “당신 잘못이 아니야”라고 하는 단순한 말이면 충분했다. 그냥 아내의 편에 서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아무튼 뒤늦게 아내에게 미안하다 했을 때는 이미 상당한 대가(?)를 치른 뒤였다.

    # 예전 미국 영화를 보면 아이를 아기 침대에 넣어 딴 방에 재우는 모습이 나온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서구 심리학자들은 동물행동학의 연구를 통해 새끼들의 모성 갈구를 허기를 충족시켜주는 대상에게 생기는 2차적인 감정으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양육전문가들도 아이들에게 과도한 애정을 보이지 말기를 충고했다. 지나친 애정을 받고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면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1958년이 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심리학자 해리 할로(1905~1981년)가 붉은 털 원숭이를 이용해 이른바 ‘헝겊엄마, 철사엄마’라고 알려진 실험을 한 이후다.

    간단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할로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붉은 털 원숭이 새끼를 어미에게서 분리시켜 우리에서 홀로 키웠다. 새끼는 자연적인 환경보다 더 건강하고 몸무게도 더 나갔다. 그런데 부족한 것 없는 환경에서 자란 새끼 원숭이는 우리에 웅크리고 앉아 손가락을 빨며 허공만 바라보는 것이었다. 또 다른 특이한 행동을 보였는데 우리 안 수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었다. 할로는 힌트를 얻었고 가짜 어미를 만들어주는 실험으로 이어졌다. 철사로 만든 어미에게는 우유병을 매달고 또 다른 어미는 우유병이 없는 대신 부드러운 헝겊과 수건으로 감싸 놓았다. 원숭이는 하루에 열두 시간이 넘도록 천으로 만든 어미에게 매달렸다. 철사 어미에게는 잠깐씩 다가가 젖을 빨 뿐이었다.

    할로는 멈추지 않고 더 잔인한 실험을 준비했다. 몸통은 천으로 된, 그러나 잔학한 어미였다. 셋 중 하나는 새끼를 계속 흔들어 떨어뜨렸고 다른 하나는 이따금 압축 공기를 내쏘아 새끼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세 번째 것은 갑자기 쇠못이 튀어나와 새끼를 찔렀다. 불쌍하게도 새끼들은 어미가 진정되자마자 몇 번이고 다시 되돌아가 안겼다. 인상적이면서도 잔인한 실험이었다.

    # 배가 가라앉았다. 처음엔 단순한 침몰 사고였다. 하지만 사고가 사건이 되고 마침내는 사태로까지 번져 나가는 고약한 형국이 되고 말았다. 세월호 사태에서 가장 가슴 아픈 지점은 바로 사고에서 사건으로 옮겨 간 순간에 있다. 단순한 실수나 오류로 인한 우발적 사고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어쨌건 사고였다. 하지만 사건으로 번져 가는 순간 돈과 정치라는 우리 사회의 가장 잔인한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무엇보다도 위로와 포옹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에 말이다.

    윤봉한 윤봉한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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