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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0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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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승천(昇天) 언제쯤일까- 이철우(전 함양군수)

  • 기사입력 : 2014-07-0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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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의 이야기는 자녀를 둔 부모라면 예나 이제나 한 번쯤 품어보는 열망이 있다. 함양 출신 중 고(故) 김용주 전남방직 회장과 형제 사이인 형 용택과 동생 용성을 일컬어 일가삼용(一家三龍)이라고 한다. 함양초등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기념비 두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김용택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73년 동창들이 세운 기념비다.

    일가삼용 중 김용주(1905~1985) 회장이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함양군 함양읍 신관리 관변마을에서 태어났다. 돈이 어디서 배를 곯는지 그의 집은 돈이 찾아오지 않아 궁핍했다.

    그러나 되는 집안은 가지나무에 수박 열린다고, 형제들이 모두 머리가 명석하고 효심과 우애가 깊었다. 그의 부모는 일찍 개명해 살림살이가 어렵던 시절에도 자녀교육에 매진했다. 큰아들 용택은 수원농고, 동생 용주와 용성은 부산상고에 진학했다.

    김용주는 함양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5년제 부산상고(당시는 부산 제2공립상업학교)에 진학해 수석 졸업했다. 이것이 계기가 돼 부산상고는 수년간 함양초 졸업생 중 학교장이 추천한 학생을 무시험으로 입학시키는 특혜를 줬다.

    개천에서 난 용인 김용주는 부산상고 졸업 후 은행에 취직했다가 뜻한 바 있어 사업계에 투신했다. 원양어업을 시작으로 마루니 해운, 근해상선, 조선기선, 신한해운, 대한물산, 신한제분, 동해제강, 전남방직 등 수많은 기업을 일으켜 함양사람을 많이 취업시켰다. 포항에 영흥초등학교, 서울에 용문중·고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육영사업에도 크게 기여했다. 주일공사를 역임했으며 참의원,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내는 등 실업인, 교육자, 외교관, 정치인으로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독당에 정치자금을 제공하다 정치적 탄압을 받기도 했다. 자유당 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1958년 고향 함양에서 민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 자유당 후보에게 42표 차이로 석패했다. 2년 후 1960년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여당인 민주당의 원내총무로 활약했다.

    왕대밭에 왕대 난다고 했다. 그의 장녀 김문희는 한국걸스카우트 총재,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고문, 용문학원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여성계의 대표적 인물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그의 딸이다. 큰아들 김창성은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전남방직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막내아들 김무성은 국회의원이다.

    김용주의 형제와 자녀들이 본인들의 능력과 노력으로 빛을 발하고 있음에도 호사가들은 조상을 명당에 모신 음덕에서 비롯된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큰 성공은 일명(一命), 이운(二運), 삼풍수(三風水), 사적덕(四積德), 오독서(五讀書)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독서는 미래를 보장해주는 가장 확실한 보험 상품 가운데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공부가 성공의 확실한 방법이긴 하지만 크게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공부가 전부가 아님을 알 수도 있다. 대통령이나 대기업 회장이 되는 데는 공부만이 전부일 수 없다.

    이철우 전 함양군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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