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05일 (일)
전체메뉴

[기고] 착한 교주 나쁜 교주- 김태현(역학전문가·주택관리사)

  • 기사입력 : 2014-07-21 11:00:00
  •   
  • 메인이미지



    착함과 나쁨을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아마 자기 마음과 느낌이 좋지 않게 느껴지고 자기 생각의 분별심을 통해 판단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쁨이 왔을 때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쁨이 떠나고 슬픔이 오고 괴로움이 왔을 때는 ‘왜 나만’이라고 반문한다. 이는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아 실현은 이런 차원에서 행해지는 인간의 성숙 단계라고 심리학에서 말한다. 나아가 자아 초월은 자기를 잃어버리고 무의식의 상념에서 욕구를 제거하지 않은 채 승화시켜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즉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을 말한다. 평범한 우리는 그런 차원으로 나아가기를 항상 주저한다. 가는 곳곳마다 유혹하는 무언가가 우리를 방해하고 우리를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인도해주는 분을 교주라고 말한다. 하지만 잘못된 교주와의 만남은 많은 것을 잃게 한다. 재산을, 건강을, 심지어 사랑하는 가족까지도 이별을 시킨다. 나쁜 교주는 이렇게 만들려고 자기 자신은 처음부터 생각을 한 사람이다. 철저히 자기의 모습에 가면을 씌우고 말하고 행동해, 착하고 순진하고 무지한 사람에게 최면을 건다. 시간이 지나 뿌리가 강하게 내리면 도끼로도 자르지 못한다. 이쯤 되면 나쁜 교주는 자기 왕국을 건설하고 싶은 욕구를 드러낸다. 이 욕구는 사회적 파장도 몰고 온다. 하지만 이때쯤 되면 응징하는 무언가가 나타난다. 우리는 그것을 ‘하늘’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어떤 모습이든 반드시 나타났다.

    이렇게 진화돼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웠다. 그리스 로마시대 때 로마가 흥하고 흥함이 지나쳐 쾌락으로 흐를 때 하늘은 응징해 새로운 세상을 이끌었고 동양도 마찬가지다. 그 하늘은 하나의 희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자기가 느끼고 생각한 바를 행하는 용기를 가진 착한 교주도 마찬가지의 표현으로 보자. 이분은 모르고 어리석고 불쌍한 중생을 위해 끝없이 노력한다. 또 한 자루의 촛불처럼 작은 불빛이지만 주변을 밝게 하면서 자기 자신은 타들어간다. 이런 촛불들이 하나하나 모여 세상은 밝아지고 어둠 속을 가고 있는 누군가를 향해 “그곳은 아니야” 하고 보여주고 또 소리쳐 준다. 세상은 이렇게 흘러간다는 우리의 마음을 그분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This too shall pass away.(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루를 시작함에 감사하라. 또 하루가 끝나고 있을 때 자기의 존재된 모습을 보고 느껴 보아라. 누구를 위해 오늘 하루를 보냈는가를.

    나? 가족? 회사? 조직?

    내일 또 답을 구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하라. 그것이 희망이다. 그것 때문에 존재하고 걸어가고 있다. 당신의 가슴에는 무언가 숨쉬고 있고 그것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항상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그 길이 타인의 행복을 무너뜨리는 행동이면 안 된다.

    김태현 역학전문가·주택관리사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