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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너무나 엽기적인 ‘2014년 한국’- 박동환(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 기사입력 : 2014-08-2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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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옥도끼로 찍어 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지어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 만년 살고지고.”

    이 노래가 살아 있으면 널리 불리고, 있으면 또 삼일천하로 끝난 김옥균은 ‘獨而靜之 徐淸(독이정지 서청)’이라 했다.

    사람마다 개성이 있듯 생각도 하는 짓도 다르다. 일본의 사이고 다카모리는 어느 날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화장실을 나오면서 ‘이것이 인생일까’ 하고 자문했다.

    같은 일본인이지만 생각은 다르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인 한 사람과 일본인 한 사람을 대비한 후 실망했다.

    그런데 한국인 열 사람과 일본인 열 사람을 대비해 보곤 힘과 자신감을 얻어 못된 생각과 짓거리를 하게 됐다.

    필자는 교단생활 47년 중 학생상담의 교도교사 교육도 받고 자격증도 땄다. 이해하고 역지사지의 마음이 되어라, 웃으며 모든 것을 맞으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비전문가일수록 폭언과 폭행을 하며 무리한다.

    ‘대안이 없으면 불평’이라는 말이 있다.

    최근 별이 네 개씩 떨어지고 무궁화가 사정없이 떨어졌다. 27세의 위관급이 전군의 장병을 모아 놓고 인권교육을 했단다. 전 장관까지 사표를 받아야 한다는데 27세가 인권교육을 한다고 어불성설이라며 반론이 드세다.

    참 기분파다. 단순하다. 즉흥적이다.

    미국이나 우방은 무엇이라 하며 일본에선 무엇이라고 할까. 북한에선, 일간지가 제때 그들의 책상 위에 갖다 놓인다고 한다. TV는 또 어찌할꼬.

    나는 6·25때 종군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다. 수십 번 죽을 뻔도 했고 그들과 육박전도 했다. 결론은 우리와는 너무나 달랐다. 발상의 차이도 컸다. 그때 나는 22살의 혈기 방장한 청년이었다. 죽는 줄 사는 줄도 몰랐다. 보초를 서면 내 목이 달아나는 줄도 모르고 부대원이 죽는 줄도 모르고 그저 본능과 생리대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저쪽(북한)은 개를 앉히는 것이 아닌가. 개는 한밤중에도 100m 앞의 소리도 발자국에도 짖는다. 여기에 거짓이 있을까.

    ‘소대가리는 꺾어도 사람 인격은 못 꺾는다’는 말이 있다.

    ‘人必自侮然後人侮之(인필자모연후인모지)’란 말도 있다. 6·25때 종군했을 때 이야기다. 22살이었는데 상하 모두 대학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이었고 딴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모두 열심히 싸웠고 휴전도 맞았다. 뜻과 마음이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학생은 어찌 마음이 모이지도 않고 상하가 그렇게 흑백일까.

    교육 교육하지만 각 가정마다 한둘씩 낳은 세태에서 자식을 길렀으니 선생은 교육을 어찌할까 참으로 걱정스럽다.

    박동환?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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