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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의 70년…3대째 이어진 원폭의 상처

통한의 70년 (상) 원폭 피해 2세들의 삶

  • 기사입력 : 2015-03-0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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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원폭2세 환우회 회장 한정순씨

    <그녀의 증언>
    부모님은 일제의 수탈을 견디다 못해 히로시마로 건너갔어요. 원폭 투하 때 첫 아이를 임신중이었고요
    겨우 살아왔지만 고향 합천서 태어난 형제자매들은 모두 원인 모를 고통에 시달리거나 죽었어요
    제 소원은 원폭 피해 2·3세대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이들을 위한 전문요양시설을 세우는 겁니다

    “어머니는 형제들 중 유독 저를 많이 미워하셨어요. 정말 매정했죠. 자식을, 저를 품어주지 않고 자꾸만 밀쳐 내셨어요. 그땐 정말 너무너무 야속하고 섭섭해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얼마나 미웠다고요. 근데 지금 돌이켜 보면 사랑이었어요. 어머니가 저를 미워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애처롭고 안타까워서 그러셨던 거 같아요. 시집간 딸이 낳은 첫 아들이 뇌성마비였으니 얼마나 마음 아팠겠어요. 모든 것이 자신으로 인해, 자신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셔서 더 매몰차게 저를 내치신 거 같아요. 세상에서 홀로서기를 잘하라고…, 혼자 스스로 세상의 풍파에 맞서 잘 싸워 나가라고…, 이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사랑이라고….”

    2남 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저(한정순·56·한국원폭2세 환우회 회장)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피해를 입은 ‘원폭 피해 2세대’입니다.

    합천 율곡에 살던 저희 부모와 친척들은 일제의 수탈을 견디다 못해 일본으로 건너가 히로시마에 자리를 잡았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본에서 만나 결혼하셨대요. 하지만 이미 아버지는 전 부인과 사별 후 두 남매가 있었고, 어머니는 그 사실을 결혼한 후에 알았답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당시 첫째 아이를 임신 중이셨던 어머니는 혼자 부엌에서 일을 하다 벽이 무너지면서 허리를 다쳐 척추가 휘어지는 중상을 입었답니다. 밖에서 일을 하시던 할머니와 첫째 삼촌은 열선에 화상을 입으셨고, 다섯째 삼촌은 발뒤꿈치를 크게 다치는 부상을 입었답니다.

    원폭 투하로 인해 폐허로 변한 도심의 한 마을에서 겨우 살아남은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이듬해 고향 합천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가족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했어요.

    일본에서 태어나 합천으로 온 첫째 오빠는 시름시름 앓다가 돌이 지날 무렵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엄마의 품속에서 젖을 물고 눈을 감았대요. 할아버지 또한 귀국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뇌졸중과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대요.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년 만에 돌아가셨어요.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우리 형제들은 모두 합천에서 태어났어요. 어릴 때부터 허약했던 저는 15살 때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다리 통증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어요. 다리가 너무너무 아픈 거예요. 통증이 심할 땐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밀고 다녔어요.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일 정도였으니 고통이 어땠겠어요?

    24살에 결혼을 했죠. 그러나 행복도 잠시, 첫 아이가 뇌성마비 1급 장애를 안고 태어나면서 아픔은 더욱 커졌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픈 다리마저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어 수술을 받아야만 했어요. 병명은 ‘대퇴부무혈성괴사증’. 대퇴부 쪽으로 피가 돌지 않아 뼈가 썩어 들어가는 병이라고 하대요. 인공관절을 넣는 수술을 받고 나서야 겨우 걸을 수 있었답니다. 우리 형제들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고통을 겪기는 마찬가지였어요. 큰언니는 뇌경색을, 둘째 언니는 어깨관절 괴사로 인한 수술을 받았습니다. 셋째 언니 역시 저와 같은 대퇴부무혈성괴사증을 앓고 있어요. 오빠는 심근경색과 협심증을, 막내 동생은 30대 초반에 잇몸이 약해져 치아가 모두 흘러내리는 질병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답니다.

    형제들은 때때로 모여 ‘이 모든 질병의 원인이 원폭 때문이 아닐까’라고 얘기하면 옆에서 듣고 계시던 어머니는 버럭 화를 내시곤 하셨어요. 아예 말도 못 꺼내게 하셨죠. 아마도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자식들이 질병을 앓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의 아픔이 저희들보다 훨씬 더 크셨던 것 같아요. 치매를 앓고 있는 저희 어머니는 평생을 자식 걱정으로 살다 지금은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 입주해 생활하고 계시답니다.

    저의 마지막 소원은 오직 하나랍니다. 원폭 피해 2·3세대들을 위한 생계비·의료비 지원과 실태조사가 포함된 ‘원폭 피해자 특별법’이 하루빨리 제정되는 것입니다. 애절한 심정으로 조속히 특별법이 제정되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지만 벌써 몇 년째 제자리걸음입니다.

    저희는 원폭 특별법 제정과 함께 원폭 2·3세대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전문요양시설이 절실히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원폭 피해자 2·3세대들 중 장애가 심각한 환우들의 경우 고령의 부모가 누워 있는 자식들을 돌보기 어렵기 때문에 이들을 돌보고 치료할 수 있는 전문요양시설이 꼭 있어야 해요.

    원폭 피해를 입은 저희 2세들도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아요. 많지 않은 이 시간을 얼마만큼 치료를 받아 사람답게 한 번 살아보고 갈 수 있을지, 그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정말 답답하기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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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폭피해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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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폭피해 사진들

    <잠자는 특별법>
    4개 법률안 상임위도 통과 못해
    2·3세대 실태조사·지원 등 담겨

    한국 원폭 피해자들이 오매불망 손꼽아 기다리는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특별법’(이하 원폭 특별법)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을까?

    현재 국회에는 원폭 특별법과 관련해 4개의 관련 법률안이 제출돼 있지만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특별법의 주요 내용은 ①국무총리 소속 하에 한국인원폭피해자지원위원회 조성 ②보건복지부장관 소속 하에 한국인원폭피해자지원 실무위원회 조성 ③한국인 피해자 및 피해자 자녀의 실태조사 ④피해자 및 그 자녀에 대해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지급범위와 금액의 산정 및 지급방법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등이다.

    원폭 피해자들이 ‘원폭 특별법’에 목을 매는 이유는 현재 원폭피해로 인한 2세대들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원폭 특별법이 제정돼야 이들에 대한 실태 전모를 규명하는 등 피해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일본의 ‘원자폭탄피폭자에 대한 원호에 관한 법률(원호법)’을 근거로 피폭 당시 피폭자의 태아였던 사람 이외에는 피해자 자녀 지원에 대한 규정이 없고, ‘피폭 2세’ 건강영양조사 분석결과에서도 부모의 피폭으로 인해 자녀의 질환 위험도가 증가한다는 증거는 없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자 자녀에 대한 실태조사에 신중한 검토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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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세들의 현주소>
    원폭 2세는 일반인보다 빈혈 88배, 심근경색·협심증 81배, 우울증 65배 높지만 기초의료지원조차 안돼
    지난 2013년 도내 원폭 피해자 1125명 실태조사 결과 자녀 20.2%가 선천성 기형이나 유전성 질환 앓아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와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으로 발생한 피해자는 대략 70만명, 이 중 한국인은 10%에 달하는 약 7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서 4만명은 현장에서 숨졌고, 생존자 3만명 중 2만3000명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현재 국내에는 2600여명의 원폭피해자가 등록(한국원폭피해자협회)돼 있으며, 경남에 869명이 살고 있으며 이 중 합천에 617명이 생존하고 있다.

    이처럼 합천에 원폭피해자가 많은 이유는 합천이 내륙과 바다를 이어주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어 일본군으로부터 강제 징용을 많이 당했고, 무엇보다 먹고살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해 군수공장 등에 일했던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폭 2세의 존재는 2002년 3월 ‘선천성 면역글로블린 결핍증’을 앓던 고(故) 김형률(1970~2005)씨가 자신이 앓고 있는 희귀성 난치성 질환이 원폭 후유증으로 인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원폭 피해자 2세들의 건강과 처우 등 사례와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2002년 ‘원폭 2세 환우회’, 2003년 ‘원폭 2세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리는 등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아픔은 대물림되고 있지만 2·3세들은 아직 원폭피해자라는 사실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013년 경상남도가 ‘경남도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 조례’에 근거해 실시한 ‘경남도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조사’는 자녀의 유전성 질환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도내 주소를 둔 원폭피해자 1세 666명, 2세 339명, 3세 120명 등 총 1125명을 대상으로 3개월 동안 이뤄진 최종보고서 결과 응답자의 20.2%가 자녀의 선천성 기형 또는 유전성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원폭피해자로서 생활하기 가장 어려운 점으로 ‘출산 및 자녀 건강 등 유전적 불안감’(5점 기준·3.44)을 꼽았다.

    특히 2세는 한일 정부로부터 의료지원과 건강관리 수당을 받고 있는 1세에 비해 체계적인 지원정책과 기초 의료 지원조차 없어 인권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가 2004년 원폭피해 2세 1226명을 대상으로 건강상태를 조사한 결과 남성의 경우 빈혈 발생 확률이 일반인의 88배에 달했다. 심근경색·협심증이 81배, 우울증은 65배, 천식은 26배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원폭피해 2세 중 7.3%(300명)는 사망했고, 사망 당시 연령이 10세 미만인 경우가 52.2%를 차지했다.

    글=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사진= 성승건 기자 mkseon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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