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6월 02일 (일)
전체메뉴

지리산 역사문화 탐방 (3) 정령치 습지와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천년을 견뎌 온 마애불은 도반(道伴) 같은 습지를 내려다보고…

  • 기사입력 : 2015-08-27 22:00:00
  •   
  • 메인이미지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령치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보물 제1123호로 지정된 이 불상군은 12구의 불상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지리산은 다양한 생물유전자원을 지닌 생태계의 보고이다. 483㎢의 광대한 유역에 난대림부터 한대림까지 해발고도 차이에 따른 다양한 식생대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가치가 높은 습지도 곳곳에 분포해 있다. 특히 지리산 습지는 대부분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대에 있어 고산습지로서 독특한 생태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조사, 연구가치가 높아 관련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지리산의 주요 고산습지로는 널리 알려진 왕등재 습지 외에도 외곡습지, 덕평습지, 정령치 습지, 세석고원 습지 등 여러 곳에 다양한 형태로 분포되어 있는데 이번 탐방팀은 정령치 습지를 탐사하고 인근의 개령암지 마애불상군도 돌아보기로 한다.

    정령치 습지와 개령암지 마애불상군은 지리산 서북능선 고리봉 남사면 자락에 있다. 이곳은 해발 1200m에 이르는 고산지대이지만 정령치까지 차량 접근이 가능해 체력부담 없이 산책로를 따라 편하게 탐방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정령치에서 정령치 습지까지 600여m 구간은 지난 5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선정한 ‘국립공원 걷기 좋은 숲길 50선’에 포함될 정도로 호젓하게 걷기 좋은 고산 산책로이다.

    ▲마한의 전설이 서려 있는 정령치

    탐방팀은 정령치 주차장 뒤의 언덕을 올라서며 탐사활동을 시작한다. 남쪽으로는 달궁 마을과 심원골 너머로 지리산 주능선이 장쾌하게 펼쳐져 있다. 상봉인 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지리산 주능선의 북사면이 한눈에 조망된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푸른 운봉평야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시원한 조망을 선사하는 정령치, 이곳은 전북 남원 산내면과 주천면 사이의 고개, 지리산 서북능선 만복대와 고리봉 사이의 재이기도 한 이곳은 해발 1172m에 이르는 고원지대이다. 차량통행이 가능해 지리산 서북능선을 산행하는 산객들에게 들·날머리로 애용되고 있고 지리산 태극종주와 백두대간 길이 통과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이곳은 지형, 지세가 자연성곽 역할을 하고 있어 손쉽게 적을 방어할 수 있는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마한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한의 왕이 달궁(전북 남원시 산내면)에 궁궐을 짓고 진한,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씨 성의 장수로 하여금 이 고갯마루를 지키게 했는데, 정령치란 지명도 거기서 유래됐다고 한다.
    메인이미지
    정령치 습지

    ▲정령치 습지와 야생화 그리고 잣나무 숲길

    습지 가는 길, 분위기 있는 산책로이다. 주변에는 여름 꽃이 활짝 피어 탐방팀을 반긴다. 초입부터 가을의 전령사 쑥부쟁이를 비롯해 술패랭이꽃, 어수리, 물봉선, 노랑물봉선, 원추리, 짚신나물 등이 만개하여 사열하듯 늘어섰고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뻐꾹나리도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아닌데, 지리산에서 두 번째 대면이다. 몇 년 전 달궁 마을 안쪽 언양골에서 처음 대면했는데 언양좌골의 발원지인 정령치 습지 근처에서 발견되는 걸로 보니 언양골 주변에 많이 분포해 있는 것 같다. 뻐꾹나리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말이 ‘영원히 당신 것’이다. 뻐꾸기는 번식기가 되면 짝을 찾아 많이 울어대는데 그 무렵에 이 꽃이 활짝 피어 뻐꾹나리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고, 흰색 꽃잎에 자주색 반점이 뻐꾸기 가슴 털 무늬를 닮아서 그렇다는 설도 있다.

    주차장에서 고리봉 방향으로 300여m 진행하면 이정표와 함께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 오름길은 고리봉 가는 길, 습지는 우측 길이다. 꽃길을 지나니 이제는 잣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오엽송 잣나무 솔 향이 솔솔 풍기니 발걸음도 가볍고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이곳은 원래 사탕무 밭으로 개간하였다고 한다. 1960년에 이 일대 165만㎡를 개간해 사탕무를 심었다가 실패하고 1973년 이후, 잣나무 2000여 그루를 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메인이미지
    술패랭이꽃

    갈림길에서 다시 300여m 잣나무 숲길을 따르면 습지가 나타난다. 고산습지로서는 규모가 꽤 큰 편이다. 습지는 3271㎡ 규모로 잣나무와 낙엽송 숲에 둘러싸여 있다. 관찰로가 설치돼 있어 이 길을 따라 습지를 둘러본다.

    습지 중앙부는 산뚝사초가 우점을 이루고 있고 가장자리에는 대표적인 습지 정화식물인 고마리가 빽빽하게 밀생하며 군락을 이루고 있다. 점점이 하얗게 꽃을 피운 어수리와 선홍색으로 치장한 산비장이가 초록 습지 위를 화려하게 수놓은 모습이다. 잎을 비비면 오이 냄새가 난다는 오이풀과 절정을 넘긴 꼬리풀도 보인다. 꽃이 진 하늘말나리는 씨방만 달고 있고 주변에는 여우오줌과 며느리밥풀도 관찰된다. 이 외에도 동자꽃, 동의나물, 숫잔대, 당귀, 꽃창포 등 다양한 식물이 분포해 있다.

    ▲습지는 생산과 소비의 균형 갖춘 다양한 생명체 보고

    습지는 자연생태계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습지는 물이 흐르다 고이는 오랜 과정을 통해 다양한 생명체들을 키움으로써 완벽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갖춘 하나의 독립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생명체의 서식처를 제공하고 물을 저장하며 정화한다. 정령치 습지도 그 과정을 거쳐 생명수를 언양좌골로 흘려 보낸다. 정령치 습지는 언양골의 발원지이자 수원지인 셈이다. 또한 기후조절과 홍수억제, 생태연구와 자연학습장을 제공하는 등 습지는 여러 가지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메인이미지
    정령치

    ▲개령암지와 마애불상군

    정령치 습지를 탐사하고 인근의 개령암지와 마애불상군을 돌아본다. 한때 수도승이 머물고 석공이 기거했을 암자는 돌과 기와 파편만 나뒹굴 뿐 흔적조차 찾기 어렵고, 울퉁불퉁한 암벽에 새긴 마애불만 남았다. 그마저 오랜 세월 풍화로 마모가 심해 일부를 제외하고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이곳에는 12구의 불상이 새겨져 있고 불상의 형식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보물 제1123호로 지정돼 있는 마애불상군을 찬찬히 돌아보고 정령치로 되돌아 나온다.

    건너편 남쪽하늘, 하늘 맞닿은 지리산 주능선에는 어느새 운해가 몰려들었다. 운해 속에 마루금(능선의 선)을 살짝 숨긴 어머니 산 지리산, 더 강한 호기심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며 유혹하듯 손짓하고 있다.

    정령치 습지와 개령암지 마애불상군, 그곳을 향하는 들머리에는 멋진 조망이 있고, 꽃길과 숲길로 단장한 걷기 좋은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그 끝에는 살아 숨 쉬는 습지와 천년의 마애불이 기다린다. 가족과 함께 가볍게 소풍 가듯 찾을 수 있는 곳이 그곳이다.

    글·사진=김윤관 기자 kimyk@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윤관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