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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02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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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역사문화 탐방 (7) 광덕사골의 이성계 석굴과 기도처

고려말 이성계가 조선 개국 꿈꾸며 기도하던 곳

  • 기사입력 : 2015-10-2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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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성계 석굴 위 좌선대
    산죽밭 속 바위 … 개국 기도 전설 전해

    암법주굴
    큰 바위가 성곽처럼 둘러싼 천연요새

    천왕동릉
    오색 물감 뿌린 듯한 기품 있는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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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중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산등성이에 울긋불긋 단풍이 내려앉아 있다.

    깊어가는 지리산의 가을, 천왕봉 주변 능선과 고지대에는 단풍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추위가 빨리 오는 지리산 천왕봉, 주변 단풍도 그만큼 빨리 물들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래서 제대로 된 상봉 주변 단풍 조망은 쉽지 않다. 하지만 때를 잘 맞추면 감동의 단풍 조망을 할 수 있다. 남한 내륙의 최고봉, 천왕봉 주변 단풍도 어느 유명 가을 산 못지않게 곱고 기품 있다.

    탐방팀은 지리산 천왕봉 단풍시기에 맞춰 조선 태조 이성계의 전설이 서린 지리산의 비처를 답사하기 위해 순두류를 출발해 법계사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이성계는 지리산과 인연이 많았다. 천왕봉 동남사면의 광덕사골에는 이성계의 기도처로 알려진 ‘암법주굴’이 있고, 인근에는 이성계 석굴로 불리는 작은 석굴이 있다. 오늘 탐방은 그 두 곳을 돌아보고 천왕동릉을 걸어 천왕봉에 올랐다가 중봉을 거쳐 중봉골로 하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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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계 석굴 위 좌선대


    광덕사지와 이성계 석굴

    중봉골 초입을 지나 법계사 방향으로 오르면 광덕사교가 있다. 작은 목교로 순두류에서 2.1㎞ 지점에 있는데 이곳이 광덕사골의 초입이다. 탐방팀은 법계사길 우측의 계곡으로 진입, 계곡 옆의 희미한 등로를 따라 계곡상부로 오른다. 계곡 입구에서 40여 분 숲길을 헤치고 오르면 석축이 보이고 그 뒤로 거대한 암벽이 나타난다.

    이곳은 이전에 ‘광덕사’란 절이 있던 곳이다. 석축을 쌓아 편평하게 만든 절터 뒤에는 암벽이 병풍같이 둘러싸고 있고 남향이라 온기가 돌며 암벽 아래 한편에는 맑은 석간수가 흐르는 샘이 있다. 한때 번성했던 절이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지금은 절터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탐방팀은 절터를 둘러보며 시원한 석간수로 목을 축이고 계곡 상부로 향한다. 고도를 높일수록 진해지는 단풍, 청홍이 적절하게 어울려 더욱 싱그러운 느낌을 준다. 단풍은 황·녹·적색이 고루 어울릴 때가 가장 멋있다.

    광덕사터에서 다시 40여 분 광덕사골을 오르면 계곡을 횡으로 가로지르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곳이 암법주굴 입구이다. 여기서 우측으로 바위 자락을 돌아 오르면 암법주굴이 있다. 탐방팀은 암법주굴과 반대 방향에 있는 이성계 석굴을 먼저 답사하기로 한다. 갈림길에서 좌측의 천왕샘골 방향으로 5분가량 이동하면 등로 좌측사면 산죽밭 속에 바위지대가 보이는데 그곳에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이성계 석굴이 있다. 산죽을 뚫고 조금 내려서면 큰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를 왼쪽으로 돌아내리면 측면에 굴 입구가 있다. 입구는 좁아 굴 같지 않지만 기어서 내부로 들어가면 제법 너른 공간이 나타난다. 석굴 속으로 기어들어가 보니 비닐, 스티로폼 등이 널려 있다. 누군가 근래까지 기거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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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동릉


    지리산의 신비지처 암법주굴

    탐방팀은 이성계 굴을 탐사하고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 바로 우측의 암법주굴로 들어선다. 마치 어느 시골 오두막집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는 기분이다. 담장 같은 바위 자락을 돌아 좁은 입구를 들어서면 편평하고 양지 바른 마당이 나타나고, 마당 뒤쪽에는 집을 연상케 하는 처마 달린 커다란 암벽이 있다. 천천히 암법주굴을 둘러본다. 바위굴은 아니지만 거대한 바위 자락에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이 있고 그 앞으로 마당 같은 널찍한 터가 있다. 외곽으로 바위가 마치 성곽처럼 둘러쳐져 있어 천연의 요새와 다름없다. 성곽처럼 생긴 바위에 올라보니 조망도 좋다.

    이성계의 기도처로 전해지는 이곳 암법주굴, 지리산 신비지처 중 한 곳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성계는 지리산과 인연이 깊다. 그는 남해 금산과도 인연이 있듯이 남부지역과 지리산 자락을 자주 왕래했던 모양이다. 고려 말 우왕시절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고 이성계는 왜구 격퇴를 위해 남부지역에 자주 출정했다. 왜구의 빈번한 출몰과 노략질은 당시 조정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그들의 숨통을 일거에 끊어놓은 황산대첩은 그의 위상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됐고 아마도 조선 개국의 발판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는 1380년 지리산 바래봉 자락의 남원 운봉면의 황산에서 300명의 군사로 10배가 넘는 왜구를 격퇴시켰는데 이른바 ‘황산대첩’이 그것이다. 이때 이성계에게 패한 왜구 잔당은 지리산으로 숨어들어 천왕봉에 올라 성모사의 성모상을 훼손하고 천왕봉 아래의 법계사를 불태우기도 했다.

    이성계는 이런 인연들로 남부지방을 돌아보고 민초들의 신앙과도 같았던 고려반도 남반부 최고의 성산 지리산, 그중에서도 천왕봉 기가 활발한 이곳에 한동안 머물며 큰 야망이 이뤄지길 천왕성모께 간절히 기도하고 결의를 다지면서 조선 개국의 밑그림을 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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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법주굴


    단풍으로 불타는 상봉과 천왕동릉

    암법주굴을 돌아보고 광덕사골과 반대쪽, 동쪽 방향으로 사면길을 10분가량 걸어 천왕동릉으로 올라선다. 이 능선은 천왕봉에서 시작해 순두류 방향으로 뻗어 있는데 중봉골 초입 부근에서 주등산로와 연결되며 그 맥을 다한다. 탐방팀은 천왕동릉을 타고 천왕봉으로 향한다. 약간 거칠고 투박한 동릉 길 주변은 단풍이 절정이다. 사방이 온통 불바다다. 좌측 방향으로는 천왕샘 아래의 지능이 불타고 있고 우측에는 중봉골과 써리봉 주변 암릉에 오색 물감을 뿌린 듯이 기품 있는 풍광이 조망된다. 탐방팀은 들뜬 마음으로 불타는 동릉 숲길을 산책하듯 가볍게 오른다. 온통 붉게 타오르는 단풍 속을 걸은 산객의 얼굴에도 붉은색이 물들었다. 사방으로 눈만 돌리면 한 폭의 그림이다. 단풍에 취해 발끝이 땅에 닿는지 스치는지 모를 정도로 거친 동릉 길도 날아갈 듯 가볍게 걸어 상봉에 도착한다. 암법주굴에서 1시간 40분가량 소요됐다.

    지리산 천왕봉 정상, 가슴이 뻥 뚫릴 듯 시원한 조망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능선마다 추색이 가득하다. 천왕봉을 오른 가을 산행객들, 모두 들뜬 표정이다. 대자연의 좋은 풍광은 마법과 같아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같은 생각을 하게 하고 한마음으로 뭉치게 만든다. 일망무제, 천왕봉에서 한동안 가을 조망을 즐기다가 중봉으로 향한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천왕봉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서다.

    중봉 가는 길 주변에도 단풍이 한창이다. 중봉골과 마폭포골이 좌우에서 경쟁하듯 불타고 있고 뒤돌아본 천왕봉 북사면은 옅은 구름이 깔린 하늘을 배경으로 오후 햇살에 반사돼 오색으로 반짝인다. 천왕봉에서 0.9㎞ 거리에 있는 지리산의 제2봉인 중봉(해발 1874m)에 올라선다. 중봉 앞의 조망바위에서 바라보는 상봉 조망은 가위 압권이다. 거대한 검은 바위 봉우리 주변으로 빨간 물감을 뿌린 듯한 홍엽은 점점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운해가 몰려들어 상봉의 동사면을 감싸니 더욱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며 실로 장엄한 풍경을 연출한다. 상봉 조망에 매료돼 한동안 중봉에 머물다가 다시 중봉 안부로 되돌아 내려와 중봉골로 내려선다. 중봉골의 청정옥수와 화려한 단풍의 배웅을 받으며 순두류로 하산해 이성계 전설과 상봉 단풍 산행을 겸한 탐방 산행을 마무리한다.

    글·사진= 김윤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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