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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0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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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역사문화 탐방 (8) 최치원의 전설 서린 법계사와 문창대

1100년 전, 최치원은 이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 기사입력 : 2015-11-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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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에는 오랜 옛적부터 수많은 선인들이 오르내렸다. 500여 년 전에는 조선의 지성 김종직과 조식, 이륙 등이 올랐고 800여 년 전 고려조에는 파한집을 쓴 이인로가 청학동을 찾아 지리산에 들었다.

    혼탁한 세상에서 길을 잃은 선인들은 피안의 세계인 지리산에 들어 자신의 나갈 길을 물었다. 이들보다 훨씬 앞선 1100여 년 전, 이미 지리산에 들어 청학동의 전설을 만든 선인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신라 최고의 지성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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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최치원이 명상과 수양을 했다는 지리산 문창대.

    ▲지리산과 최치원

    서기 857년에 태어난 최치원은 12세 어린 나이에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다. 선생은 유학 7년 만인 18세 때 당나라 과거시험인 빈공과에 급제해 관료생활을 하다가 ‘황소의 난’ 당시에 토벌군 종사관으로 참여해 ‘토황소격문’을 지어 그의 문명(文名)을 천하에 떨치기도 했다. 17년간 당나라에 머문 선생은 885년 신라로 귀국해 관직을 맡지만 당시 골품제의 부조리와 혼탁한 현실 정치에 염증를 느끼고 함양태수 등 변방을 돌다가 40여 세 무렵, 젊은 나이에 관료생활을 접고 은퇴한다. 선생은 함양태수 시절은 물론, 은퇴 후에도 지리산에 자주 들었고 한동안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쌍계사와 화개동천, 불일폭포 등에 선생의 흔적이 남아 있고, 피리를 불고 거닐었다는 고운동, 활을 쏘며 심신을 닦았다는 문창대 등 지리산 자락에는 선생과 얽힌 많은 얘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특히 쌍계사의 진감선사 비문은 선생의 친필을 새긴 것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마지막 여생을 가야산 해인사에서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후세의 많은 사람들은 지리산중의 이상향을 찾아내어 그곳에서 신선이 되었다고 믿었다. 실제 300여 년 뒤 고려 때의 이인로는 무신정권으로 혼란한 정국을 피해 최치원 선생이 신선이 돼 살고 있을 이상향 청학동을 찾아서 지리산 자락을 헤매기도 했다. 그래서 지리산 청학동의 전설은 최치원으로부터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탐방팀은 최치원의 전설이 서린 법계사와 세존봉 자락에 위치한 문창대를 탐방하기로 하고 중산리를 출발해 법계사로 향한다. 이번 탐방은 최치원 선생이 자주 찾았던 법계사를 돌아보고 심신수양 장소였던 문창대를 거쳐 세존봉 능선을 타고 내려 다시 중산리로 되돌아오는 일정이다.

    언제나 상봉을 찾는 등산객으로 붐비는 중산리 주차장, 오늘도 이른 아침부터 지리산의 만추를 즐기려는 산행객들이 분주히 오간다. 탐방팀은 7시를 조금 넘긴 시각, 법계사로 향해 오르며 일정을 시작한다. 지리산의 수문장 칼바위를 지나고 망바위에 올라서니 한기 머금은 초겨울 바람이 세차게 분다. 성큼 다가선 겨울을 느끼게 하는 송곳바람이다. 망바위 옆의 조망바위에 올라 만추의 깊은골과 천왕남릉, 일출봉 능선을 조망하고 로타리 대피소를 지나, 산행시간 2시간 만에 법계사 경내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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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풍 숲속의 법계사.

    ▲왜인들 만행에 3번이나 불탄 법계사

    법계사는 신라시대의 고찰로 15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법계사는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께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인도에서 모셔와 봉안한 적멸보궁 도량이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천왕봉 자락의 상징성과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1450m)에 위치한 절로 의미가 크고, 법계사가 흥하면 일본이 쇠한다는 전설로 인해 왜인들에 의해 절이 여러 번 불타 없어지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일찍이 고려 말에는 남원 인월 황산전투에서 이성계에 대패한 왜적들이 지리산으로 도망쳐와 천왕봉의 성모상을 훼손하고 법계사를 불태우는 악행을 저지른 바 있고, 임진왜란과 한일합병 때에도 왜인들에 의해 또다시 불태워졌다. 그 이후 6·25전쟁 때 다시 한 번 소실돼 방치되다가 80년대 들어서며 조금씩 복원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전시물, 포탄처럼 생긴 쇠말뚝이다. 이 쇠말뚝은 일본인들 만행의 산물로, 이들이 지리산 천왕봉의 정기를 끊기 위해 법계사 뒤쪽 혈 자리에 박은 쇠말뚝인데, 10년 전 우연히 발견하고 뽑아 여기 전시해 놓은 것이다. 그들은 우리 민족정기를 훼손하기 위해 전국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 놓았는데 지리산 어디엔가 중요한 혈 자리에 더 박혀 있을지도 모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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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계사와 세존봉.
    법계사 경내에 단풍이 아주 곱게 물들었다. 고요한 산사와 단풍이 어울리니 더욱 호젓하다. 여유를 갖고 천천히 경내를 돌아본다. 유독 눈길을 끄는 법계사 3층 석탑, 여러 차례 화마로 모든 것이 불타 없어졌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 석탑은 보물 제473호로 지정되어 있다. 3.6m 높이로 크지는 않지만 거대한 자연암반을 기단으로 사용한 모습이 특이하다.

    석탑과 바위, 그리고 이와 어울린 가람배치, 정원에 활짝 피어난 구절초와 오색단풍 등 만추지절과 너무 잘 어울리는 법계사 분위기다. 천왕봉을 오르는 산객과 참배객들이 산사의 가을 정취에 도취돼 바쁜 일정도 다 잊고 경내를 조용히 거니는 모습이 더러 보인다. 탐방팀은 작년에 설치한 종각에 들러 무게 4t의 범종도 울려본다. 청아한 종소리, 공명이 오래도록 이어진다. 앞으로는 더 이상 화마를 입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긴 울림처럼 들린다. 탐방팀은 법계사 종소리를 뒤로하고 다음 탐방지인 남쪽의 세존봉과 문창대를 조망하며 산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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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창대에서 바라본 천왕봉.

    ▲최치원의 활터, 상서로운 기운 문창대

    로타리 대피소 앞의 헬기장으로 되돌아 나온 탐방팀은 세존봉 능선으로 접어든다. 능선 초입에서 뒤돌아본 법계사, 단풍 속에 고즈넉이 자리 잡은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고 그 뒤로 파란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상봉은 오늘따라 더 멋져 보인다. 헬기장에서 약간 거친 능선길을 따라 20분가량 이어가면 세존봉 자락의 문창대에 이른다.

    최치원의 전설이 서린 문창대, 너른 바위암반이 있고, 그 앞쪽 아래에는 기단 모양 암반 위에 갈라진 입석이 서로 등을 기대어 하늘로 향해 버티고 선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조망 또한 기막히게 좋으니 선생이 이곳을 명상과 수양장소로 택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인다. 상봉에서 법계사까지 천왕봉 남사면이 오롯이 조망되고 서쪽의 거림골 건너편으로는 천왕남릉과 곡점능선, 남부능선이 바라다보인다. 남쪽으로는 황금능선의 끝자락 구곡산과 주산, 중산리 일대가 조망된다.



    ▲문창대를 떠난 화살, 향적대에 꽂히다

    최치원은 함양 태수로 있을 때 법계사에 자주 왕래하면서 이곳 문창대에 올라 서쪽 건너편의 향적대 부근 바위에 과녁을 만들어 놓고 활쏘기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곳을 시궁대(矢弓臺), 또는 고운대(孤雲臺)라고 불리다가 훗날 최치원의 시호인 문창후(文昌侯)를 따서 문창대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탐방팀은 양지바른 암반에 둘러앉아 1100여 년 전 이곳에서 활을 쏘고 명상을 했을 선생을 떠올려 보고 지리산의 장엄한 조망에 한동안 빠져들었다가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바로 위의 세존봉으로 올라선다. 세존봉 정상은 볼품없는 작은 봉우리에 불과하지만 조망은 볼만하다. 상봉과 중봉, 써리봉을 비롯해 황금능선, 하산할 남쪽방향의 세존봉 능선도 잘 조망된다. 세존봉 능선은 법계사 앞 헬기장에서 시작해 중산리 등산 초입 부근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일컫는다. 잠시 세존봉에 머물며 지리산의 수많은 골과 능선을 가늠하다가 남쪽으로 능선을 타고 중산리로 향해 내려선다. 하산길 주변 곳곳에 상봉 조망바위가 있고 거칠다가도 부드러운 등로는 산행 재미를 더해준다. 탐방팀은 만추의 세존봉 능선을 2시간가량 걸어내려 중산리 산행기점 700m 전방에서 주등로에 합류하며 6시간 30분간의 법계사와 문창대 탐방일정을 마무리한다.

    김윤관 기자 kimy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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