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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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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역사문화 탐방 (11) 역사 속의 수곡골과 단천독바위

세월 따라 잊히고 사라진 길, 마을, 사람들

  • 기사입력 : 2015-12-30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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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방팀이 눈으로 덮인 남부능선에서 단천독바위로 가는 길을 헤쳐나가고 있다.


    지리산에는 잊히고 사라진 유산들이 매우 많다. 역사의 변화 속에 많은 암자가 사라졌고 6·25전쟁을 거치면서 산중마을들도 없어졌다. 또한 도로가 생기고 운반수단이 발전하면서 문물이 넘나들던 삶의 길이자 고행 길이었던 산중 장터 길도 잊혀갔다.

    지리산은 옛날부터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성지였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지리산 자락에는 400개가 넘는 사찰과 암자가 있을 정도로 불교문화가 번창했다고 한다. 이후 조선조의 억불정책과 한국동란으로 수많은 암자가 주인을 잃고 폐허가 되거나 불타 없어졌다. 그리고 옛날부터 전염병과 전란을 피해 이상향을 찾아 지리산 깊은 산중으로 모여든 사람들, 골짝마다 마을을 형성하고 살았다. 하지만 6·25 당시 지리산이 빨치산 주무대가 되면서 정부의 소개령으로 많은 마을들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지리산 자락의 사라진 마을 터와 옛날 민초들이 넘나들던 애환의 장터 길 중 하나인 수곡골과 단천독바위를 탐방하기로 한다. 하동군 화개면 의신마을을 기점으로 대성골의 대성동마을까지 오른 후, 대성동마을 맞은편의 수곡골로 진입해 해안과 내륙 간의 문물이 오가던 옛길을 걸어 수곡마을 터와 산중암자 양진암을 탐방한다. 그리고 다시 옛길을 따라 남부능선에 올랐다가 수곡골 우측 능선인 단천지능을 타고내리며 단천굴과 단천독바위를 탐방하고 단천마을로 하산하는 일정이다.

    겨울 삭풍이 몰아치는 이른 아침, 탐방팀은 의신마을을 기점으로 대성골 깊은 곳에 위치한 산골마을, 산객의 쉼터이자 허기를 달래주는 주막이 있는 대성동으로 향한다. 저 멀리 지리산 주능선은 최근 내린 눈으로 온통 새하얗고 대성골 응달에도 곳곳에 눈이 쌓였다. 얼굴을 얼얼하게 만드는 차가운 골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며 계절이 갑자기 한겨울로 순간 이동했음을 느끼게 한다. 의신에서 대성동마을까지는 2.5km 거리, 등로는 계곡 좌측으로 이어진다. 지리산 주요 계곡 중 하나인 대성골, 유역이 넓고 지계곡도 많다. 수곡골을 비롯해 달리발골, 세양골, 큰세개골, 작은세개골 등 여러 지계곡을 거느린 대성골은 사시사철 수량이 풍부하고 바위와 암반이 발달해 웅장하고 계곡미가 빼어난 곳이다. 겨울인데도 여름 못지않게 우당탕탕 물소리 요란하니 산객의 발걸음에도 덩달아 힘이 실린다. 의신을 출발한 지 1시간가량, 대성동마을에 도착한다. 대성동마을은 한때 60가구가 넘는 큰 마을이었으나 6·25 등을 거치면서 현재 3가구만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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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곡골 옛 마을터

    ▲ 장터 길과 마을이 있던 수곡골

    탐방팀은 주막을 지나자마자 우측의 대성골로 내려서서 계곡을 횡단하고, 사면 길을 걸어 수곡골로 진입한다. 수곡골은 지리산 남부능선 서쪽 사면에 발원한 계곡으로 반대편 남부능선 동쪽 사면의 자빠진골과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남부능선 서쪽 사면의 물을 모은 수곡골은 대성골과 화개천을 거쳐 섬진강으로 흘러들고 남부능선 동쪽 사면 자빠진골의 물은 거림골과 덕천강, 남강을 통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그래서 분수령인 남부능선이 낙남정맥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남부능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수곡골과 자빠진골, 물길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문물이 오가던 장터 길이기도 했다. 예전 이 길은 해산물이 많이 나던 섬진강변의 화개장과 임산물이 풍부했던 거림, 내대, 곡점 그리고 덕산장을 최단거리로 이어주던 고갯길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해안과 내륙의 문물이 오가는 교역로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흔적마저 희미해진 잊힌 곳이 되었다.

    탐방팀은 옛 장터 길을 따라 수곡골을 오른다. 초입에서 5분가량 진입해 만나는 폭포, 수곡골을 대표하는 수곡폭포이다. 수곡골의 청정수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져 내리고 있다. 폭포를 감상하며 잠시 쉬었다가 계곡 좌측으로 난 길을 이어간다. 등로에는 눈이 제법 쌓였고 낙엽과 눈이 뒤섞여 상당히 미끄럽다.

    완만한 계곡을 한참 오르다 보니 등로변 곳곳에 석축과 집터 흔적들이 보인다. 이전에는 이 부근에 수곡마을이란 산중 마을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한때 이곳 산중 마을에도 굴뚝마다 연기가 피어나고 아이들 소리로 활기 넘치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고, 남부능선을 넘나들던 상인들이 하룻밤 묵어가는 쉼터 역할도 했을 것이다. 어느 집 담장 곁에 심겼을 모과나무도 보인다. 주인 잃은 모과나무는 기다리다 못해 노랗게 익은 모과를 죄다 떨구었다. 낙과한 모과는 바닥을 점점이 노랗게 물들이고 있다. 은은한 향이 좋다. 몇 개 주워들고 산길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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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성동마을

    ▲ 수곡골 산중암자 양진암

    대성동에서 1시간 10분가량 완만한 수곡골을 걸어올라 양진암에 도착한다. 인적 끊긴 지 오래인 수곡골, 길마저 희미해져 찾아가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나마 은둔의 암자 ‘양진암’이 유일한 사람의 흔적이다. 주인은 출타 중이고 객만 조용히 쉬어간다. 뒤로는 남부능선이 지나고 앞에는 수곡골의 청량수가 흐르고 있다. 편안한 느낌을 주는 심산유곡의 고요한 암자이다. 지붕과 야트막한 돌 담장, 그리고 뜰에는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탐방팀은 산중 암자의 겨울정취에 마음을 빼앗겨 한동안 머무른다. 탐방팀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양진암을 떠나 남부능선을 향해 오른다. 오를수록 적설량이 많아지고 너덜지대에 이르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무작정 계곡을 따르다가 계곡 우측으로 올라서서 희미한 길 흔적을 찾아 이어간다. 눈길이라 더 힘들고 산행시간도 길어진다. 점차 고도를 가파르게 높이며 마침내 남부능선에 올라선다. 해발고도는 약 1200m, 양진암에서 1시간 10분가량 걸렸다. 남부능선은 세석평전 위의 영신봉에서 남으로 뻗어내려 삼신봉, 형제봉을 거쳐 하동 평사리 외둔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들며 소멸하는 능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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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천독바위

    ▲ 단천독바위와 동굴 미로길

    탐방팀은 남부능선에 올랐다가 수곡골의 우측 능선인 단천지능을 타고 하산한다. 단천지능은 남부능선에서 서쪽으로 분기해 단천교와 대성교 사이로 뻗어내려 화개동천을 만나며 그 맥을 다하는 능선이다. 단청지능 하산길, 적설량이 많고 바위와 암벽이 가로막는 험한 구간이 몇 군데 있어 조심조심 우회해 진행한다. 능선 갈림길에서 20여분 내려서니 단천굴이 나온다. 뾰족하게 솟은 암봉 아래 양쪽이 트인 암굴이 형성돼 있다.

    잠시 숨을 고르며 냉기가 흐르는 단천굴을 돌아보고 독바위를 향해 아래로 내려선다. 다시 20분가량 내려서면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지대가 눈앞을 가로막는데 바로 단천독바위다. 위용이 엄청나다. 가히 그 기세가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직진하지 않고 독바위 우측으로 우회해 독바위 중간지점으로 접근한다. 암벽 중간에 바위 속으로 진입하는 통로가 열려 있다. 미로 같은 바위 통로가 있고 구멍 뚫린 높은 바위 천장에서 햇살이 스며드니 더욱 신비감을 불러온다. 탐방팀은 바위 속 미로 같은 길을 걸어 독바위를 통과한다. 지리산 3대 독바위로 진주독바위와 함양독바위, 하동독바위를 꼽는데, 3대 독바위에 전혀 뒤지지 않는 단천독바위의 위용이다. 탐방팀은 단천독바위를 돌아보고 가파르고 거친 단천지능 길을 2시간 30분가량 걸어 단천마을에 도착하며 이번 탐방산행 일정을 마무리한다.

    글·사진=김윤관 기자 kimy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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