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5월 21일 (화)
전체메뉴

지리산 역사문화 탐방 (12) 지리산 제1경 천왕일출

기나긴 산행 후에야 맛볼 수 있는 황홀경
능선이 온통 붉게 물드는 연하낙조는 황홀하기 그지없고
운해 사이로 해가 고개 내미는 천왕일출은 일대 장관이다

  • 기사입력 : 2016-01-19 22:00:00
  •   
  • ◆2016년 신년맞이 천왕일출과 연하낙조= 어머니 산으로 불리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광대무변한 지리산. 매년 연초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을 찾는다. 추위와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내륙 최고봉인 천왕봉을 오르며 새해를 맞는 결의와 각오를 다지기 위함일 것이다.

    지리산 10경으로 흔히들 천왕일출을 비롯해 노고운해, 반야낙조, 벽소명월, 연하선경, 불일폭포, 피아골 단풍, 세석평전 철쭉, 칠선계곡과 마지막으로 섬진청류를 꼽는다. 이는 공식적인 선정도 아니고 이보다 더 멋진 비경들도 많지만 산객들의 입으로 회자되며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다.
    메인이미지
    지리10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천왕일출. 아쉽게도 구름이 끼었지만 해와 어울리며 화려한 장면을 연출한다.

    지리10경, 그중 제1경이 천왕일출이다. 남한 내륙의 최고봉 천왕봉에서 신년 초에 장엄한 일출을 맞는 것은 필설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다. 일출 명소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천왕일출은 한겨울 추위와 멀고 가파른 천왕봉을 오르는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야 볼 수 있어 감동이 배가된다. 오른다고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날씨 흐리고 구름 낀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천왕일출을 볼 수 있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탐방팀은 2016년 새해를 맞아 민초들의 신앙과도 같은 지리산 신년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맞기 위해 1박2일 탐방산행을 기획했다. 산행은 산청군 시천면의 내대리 거림을 출발해 세석평전을 돌아 연하봉과 일출봉에서 새해 첫 일몰을 맞이하고, 장터목대피소에서 2016년 첫날 밤을 보낸 다음, 새해 이튿날 아침 천왕봉에 올라 천왕일출을 대면하는 일정이다.

    2016년 새해 첫날, 탐방팀은 거림골을 오르며 금년 첫 탐방산행을 시작한다. 주능선상에서 일몰을 맞기 위해 오전 11시를 넘긴 늦은 출발이다. 올겨울 유독 눈이 귀해 지리산에도 눈이 적다. 11월 하순에 제법 많은 양의 눈이 내린 이후, 12월 내내 포근한 날씨가 이어져 지금은 응달에만 남아 있다. 연신 땀을 훔치며 거림을 출발한 지 4시간 만에 세석평전을 지나 촛대봉에 올라선다.

    지리산 상봉인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조망된다. 하지만 지리산 능선길은 걸어 보면 끝이 없다. 주름 잡힌 능선길이 마법처럼 펴지고 복병처럼 줄지어 나타나는 봉우리를 타고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잠시 지리능선의 파노라마를 감상하고 장터목으로 향한다. 촛대봉에서 장터목까지는 2.7㎞ 거리. 올겨울 눈이 귀한 지리산이지만 해발 1500m가 넘는 능선에는 곳곳이 눈이고 빙판이다. 동계장비인 아이젠을 착용하고 능선길을 이어간다. 소요하듯 걷는 해거름녘 지리산 주능길도 꽤나 운치 있다. 오후 5시가 넘어가며 등로의 눈과 노거수, 기암과 봉우리들이 점차 붉게 물들어 간다. 새해 첫날 떠올랐던 해도 뉘엿뉘엿 서쪽하늘을 반 뼘쯤 남긴 채 걸려 있다.
    메인이미지
    연하봉에서 일몰을 맞는 탐방팀.


    ◆발길 묶는 연하낙조의 매혹= 탐방팀은 석양을 등지고 기다란 그림자를 밟으며 노을에 물든 연하선경에 든다. 지리 10경 중 하나인 연하선경은 연하봉(1721m) 주변 기암괴석의 아름다움을 두고 일컫는다. 점차 붉은 기운이 강해진다. 연하봉의 괴석도 붉고 산객의 얼굴도 붉다. 일출봉과 제석봉, 천왕봉도 붉게 물들었다. 온통 붉게 타오르는 지리산 능선. 탐방팀은 연하봉에서 연하낙조의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낙조의 화려한 색상에 매혹돼 노을의 마지막 순간까지 발길을 옮기지 못한다.

    메인이미지
    연하봉에서 맞은 낙조. 지리산 능선이 온통 붉게 타오른다.


    새해 첫날 일몰의 장관을 뒤로하고 숙박지인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니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는다. 촛대봉에서 1시간 30분가량 소요됐다. 탐방팀은 숙소자리를 배정받고 취사장에서 저녁을 지어 먹은 후 일찌감치 취침자리에 든다. 저녁 8시에 소등하는 대피소, 삭풍 몰아치는 제석봉 자락 해발 1653m의 장터목 산능성에서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피곤한 육신을 빨리 편안하게 눕히는 게 상책이다.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쾌적해진 대피소 환경이다. 깨끗한 시설에 난방까지 된다. 옛날에는 취사장 아래층 자리에 작은 대피시설이 있었다. 지친 산객들이 하룻밤 묵어가던 추억의 산장, 한겨울 마룻바닥에 담요 한 장 몸에 감고 여기저기 들려오는 지친 육신의 신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기도 했다. 문득 옛 시절 향수에 젖어들며 상념에 잠긴 대피소의 밤, 2016년 새해의 첫날 밤이 그렇게 깊어간다.

    새해 둘째 날, 새벽 5시 기상해 맛깔스런 어묵탕으로 속을 데우고 6시께 신년일출을 맞으러 천왕봉을 향해 출발한다. 장터목에서 천왕봉까지는 1.7㎞ 거리, 1시간 10분가량 걸어 올라야 한다. 장터목에 하룻밤을 묵은 거의 모든 산객들이 천왕봉을 오르고 있다. 앞쪽에도 뒤쪽에도 헤드랜턴 불빛이 정상으로 정상으로 이어진다. 신년연휴, 천왕일출을 온몸으로 맞으며 지리의 좋은 기운을 얻고, 각오를 다지고자 이 추운 새벽에 가파른 험로를 힘들여 오른다. 아마 그 정성이 갸륵해 지리산의 마고할미께서 복을 내려주시리라.

    메인이미지
    써리봉에서 바라본 황금능선.


    ◆지리 제1경 천왕일출의 감동= 탐방팀은 오전 7시 10분께 천왕봉에 도착한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명당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출이 시작되려면 20여 분 더 기다려야 한다. 탐방팀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상봉의 추운 바람에 맞서 옷깃을 여미고 동녘 하늘의 여명을 주시하며 기다린다. 드디어 일출이 시작된다. 지리 제1경인 천왕일출! 붉게 물든 운해 사이로 해가 솟는다. 탐방객은 환호성을 울리고 휴대폰 영상으로 중계하는 산객도 보이고, 가까운 지인과 통화하며 감동을 나누는 사람도 있다. 평생 한두 번 볼까 말까한 천왕일출을 보며 각자의 소망을 빌어보고 새로운 각오도 다지는 모습이다. 탐방팀도 팀원들의 건승과 안전한 탐방산행을 기원해 본다. 조금 아쉬운 일출이다. 조각구름이 끼어들며 완전한 일출을 방해한다. 하지만 해와 구름이 어울리며 더욱 화려한 색상을 연출한다. 역시 명불허전, 천왕일출은 일대 장관이다.

    일출이 끝나고도 한동안 감흥이 가시지 않은 산객들로 천왕봉이 붐빈다. 정상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탐방팀도 새해 첫 대면하는 정상석을 가운데 모시고 의식하듯 기념사진을 남기고 광활한 상봉 조망에 빠져본다. 희끗희끗 눈을 이고 푸른빛이 감도는 지리산맥, 주능선이 냉기 풀풀 풍기며 꿈틀거리는 듯 역동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파도가 밀려오듯 수많은 능선과 봉우리들이 아침 햇살에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한동안 상봉 조망을 즐기다가 오전 8시를 조금 넘긴 시각, 탐방팀은 천왕봉을 내려서서 중봉으로 향한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온통 눈길이다. 지리산에서도 특히 적설량이 많은 상봉 북사면과 중봉 주변이다. 눈길은 중봉을 넘어 써리봉, 황금능선 상부까지 이어진다. 탐방팀은 지리산 제2봉인 해발 1874m의 중봉에 올라 상봉과 주능선을 다시 한 번 조망해 보고 써리봉을 돌아 황금능선, 중봉골을 거쳐 순두류로 하산하며 1박2일의 신년기획 일출산행을 마무리한다.

    글·사진= 김윤관 기자 kimyk@knnews.co.kr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김윤관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