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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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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인연에 관하여- 정진혜(서양화가)

  • 기사입력 : 2016-03-3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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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봄엔 나름 정의한 인연에 대한 단상들이 불쑥불쑥 형상화되는 것을 체험했다. 지금도 체험하고 있다. 그 단상들은 하나의 화면에 나타난다. 은유적 표현이다. 그러나 그 은유의 베일 안에는 실재가 존재하고 매우 구체적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 심지어는 생물과 무생물과의 만남, 관계까지도 인연이라는 뜻으로 표현되어져 있다.

    이런 시각적 표현의 모티프가 되어 준 것이 ‘인연’이다.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나무, 꽃, 바람, 물, 사람 등 많은 것들에게 지극한 경외로움을 표하며, 예술작품으로 그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의지의 봄날이다. 나의 작업의 화두이다.

    우리는 인연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좋은 만남은 인연, 안 좋은 만남은 악연이라고도 한다. 누구나 어떤 상황, 어떤 만남으로 인해 다치거나 아프거나 실패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때 나타난 현상의 상처나 고통을 조금만 더 고요히 바라보면 그것들이 용해되어 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의 여과상태를 볼 수 있다. 그 상태 자체가 인연의 ‘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원래 ‘인연’이라는 용어는 안에서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으로서의 인(因)과 밖에서 도와 결과를 만드는 간접적인 힘이 되는 연(緣)을 뜻하는데, 모든 만물은 이 인연에 의해 생멸한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만 인연이라는 말을 쓰며 의미부여를 한다. 지금보다 어리고 젊은 시절엔 나 또한 인연에 대한 한정된 해석으로 삶에 의미부여를 하며 지내왔던 것 같다. 그땐 미혹과 불안 속에서 슬픔 따위를 운운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내 상처와 내 슬픔만 느껴지고 그것들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늘 아팠던 기억…. 하지만 지금은 인연에 관한 것들을 제대로 관철해봄으로써 얻은 물리적, 내면적 평화를 희구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부정함으로써 연을 맺지 못하거나 악연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대상이 없는 인연은 없다. 나와 마주하는 그 대상을 선택하는 일은 자발적 인이요, 그 인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냐는 곧, 연의 세계다. 이 경우 아무리 인이 좋다 해도 연을 제대로 가꾸지 못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좋은 결과는 인연을 낳는다.

    대상에 있어서 사람이든 자연이든 사물이든 그들만의 고유성을 인정하고 그 고유한 물성에 내가 잘 대응함으로써 그들과 나는 상생, 상화의 인연이 된다고 생각한다. 인연… 하고 떠올리면 그저 감사하다.

    이런 감사의 마음을 예술가가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일이란 당연한 소명의식이며 지향하는 예술관이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면밀히 짚어보면 예술이나 문학작품의 경우 대부분의 동기부여는 인연에 근거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추상적 의미의 인연을 하나의 소리나 상으로 나타낼 때 은유적 표현은 불가피하다. 마음 안에서 유희하는 인연의 단상과는 달리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어 형상화시키기까지는 참으로 힘겨운 표현법의 난간에 부딪히기도 한다. 머리와 가슴과 손을 다 동반해도 인연의 큰 뜻을 전달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듯한 예술….

    그러나 나는 올봄, 이 아름다운 인연들을 예술작품으로 탄생시키고자 하는 의지 안에 있다.

    해마다 사계절이 오고가는 것도 인연이며, 만남은 하늘의 인연, 관계는 땅의 인연이라고도 한다. 세상에는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자연이 있듯이 만남과 관계가 잘 조화된 사람의 삶은 아름다울 것이다.

    ‘나에게 혼자 파라다이스에서 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형벌은 없을 것이다’라고 괴테가 말한 것은 모든 인연을 끊고 자적한들 의미가 없고, 그것은 곧 불행한 삶이라는 뜻이다.

    이 봄, 모든 인연에 감사해하며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사랑하며 살려 한다.

    정진혜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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