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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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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섬에 관하여- 정진혜(서양화가)

  • 기사입력 : 2016-05-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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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우리나라 남해안이나 서해안의 갯내음 물씬나는 오밀조밀한 형태의 섬, 지중해나 남미쪽의 낭만과 이상이 숨쉴 것 같은 광활한 바다와 해안이 펼쳐진 섬 등 이다. 섬이 어떠한 형태를 하고 있던 결국 섬도 육지이다. 다만 사면이 물로 둘러싸여 있을 뿐, 섬이 일반 육지와 정서적으로 다르게 와 닿는 이유는 '물' 이라는 자연 때문일 것이다.

    땅 덩어리 하나가 물 한가운데 있는 것 자체가 인간에게 시각적으로 또 감성적으로 특별한 서정성을 전해주는 속성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여행의 목적지로 섬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러한 섬들이 지나치게 개발되고 계획화되면서 자연과 가까워지기 위해 떠나던 '섬 여행' 의 의미와 맛이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현대화 라는 흐름을 거역하며 무조건 개발을 방어하는 것만도 대책이 아니지만, 어쨋든 섬의 자연적 본질이 조금씩 사라지는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안타까운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섬이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오던, '섬' 하면 분명 아득한 설렘과 그 이름에서 전해오는 고독감이, 되려 아름다움으로 전환되는 감성의 환기를 우리는 먼저 맞이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유년과 이삼십대에 섬에 대한 지극한 동경과, 그 동경의 세계를 찾아 섬여행을 많이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섬과 바다에 대한 스케치를 많이 하게 되었지만, 나의 풍부한 감수성은 단순히 섬의 풍광만 묘사하는것에 대한 갈증을 늘 느끼게 하였다. 그것은 물리적인 차원을 떠나 좀 더 인문학적인-인간적인- 측면에서의 조형언어를 찾고싶어 했던 것이었다. '섬' 이라는 것을 통해.

    그렇게 오랜시간 내 육안과 심안을 충족시켜 주는 섬을 찾아 해메고 있을때, 어느 날 나는 위대한 섬을 만나게 되었었다. 그것은 장그르니에의 <섬>이라는 책이었다. 그르니에가 만들어낸 여덞개의 섬을 읽으면서 물리적, 정신적, 심미적 세계에 있는 섬들을 발견하게 되는 쾌거를 맛보았다. 그 이후 내 머리, 내 눈, 내 마음에 있는 섬들을 체계화 시키는데 조금은 명료해졌고 막막했던 안개속을 벗어난 기분이었다.

    이렇게 '섬' 이라는 영역을 더 넓고 색다르게 확보 해 나가려 할때, 나의 욕심을 매끈하게 정리해주는 또 다른 섬을 만나게 되는 행운이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라는 정현종님의 섬, 짜릿한 통증으로 다가온 섬, 단정하고 간결한 이 두줄의 시를 만남으로써 섬에 관한 나의 방황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가 찾던, 내가 열망했던, 내가 희구했던 섬은 바로 '사람의 섬' 이었던 것이다.

    정현종님이 말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 눈을 충족시켜주는 자연의 섬도 좋지만 내가 찾아 헤매던 파라다이스 아일랜드는 마음을 충족시켜주는 사람의 섬이었다는 것을. 정현종 님의 섬에서 나는 내가 찾던 사람의 섬과 빛나는 조우를 하게 된것이었다. 이후 시간이 흐르고, 내가 가졌던 보물섬도 찾지 않고, 기억하지 않아 조금씩 잊혀져가고 나는 현실속에 묻혀 살게 되었다가 다시 섬의 유형을 그려보기 시작하면서 '사람의 섬'을 여행하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 현실이 곧 사람의 섬 이라는 자각과 함께, 덩그러니 홀로 있게 되었을때 나는 아름다운 고독의 섬이되고, 가족과 함께 할때 모락모락 밥내음 나는 따뜻한 섬이 되고, 동료들과 직장에서 함께 일을 할때 강건한 섬이 된다면 이 섬들이 모여 대한민국 이라는 커다란 섬이 만들어지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 섬들 사이로 사람이 물처럼 흐르는 유려한 영토를!

    설상 크고 작은 사람의 섬에 폭풍우가 몰아치고, 비바람 부는 날들이 많다해도 우리는 낭만을 잃지 않아야 섬을 여행할 수 있다. 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섬에 갈 수 있는 여유가 없다면 지금 내 자리에서 여행하는 좋은 코스가 있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있다. 그 섬에 가보자! 폭력으로 부터, 권력으로 부터, 부조리한 제도로 부터, 견딜 수 없는 속박으로 부터, 정신적 개발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섬으로!

    정진혜 (서양화가)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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