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6일 (금)
전체메뉴

[기고]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서금성(6·25참전유공자회 진해지회장)

  • 기사입력 : 2016-05-27 07:00:00
  •   
  • 메인이미지


    올해는 6·25전쟁이 발발한 지 66주년이 되는 해다.

    80대 중반이 넘은 필자는 지난 기억들이 낡은 사진처럼 빛바랬지만 매년 6월이 다가오면 어린 나이에 참전했던 참혹하고 치열했던 그 당시의 전쟁상황이 마치 어제와 같이 생생하게 기억된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은 모두가 잠든 새벽의 고요함을 틈타 인민군 20만명이 소련제 T-34전차 242대를 앞세워 38선을 넘어 불법 남침했다.

    급작스러운 남침에 무방비 상태였던 우리 국군은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3일 만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UN에 지원을 요청했고,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미국 스미스 부대 1개 대대 병력이 전투에 참가했으나, 그해 8월 4일 우리 국군은 낙동강까지 밀리고 말았다.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UN회원국 지원군이 도착해 낙동강 방어전선을 구축하고 반격을 하고 있던 중 9월 15일에는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전개했다. 함정 261척과 미 10군단 아몰더 장군이 지휘하는 병력과 한국군 해병 1사단, 육군 17연대가 합세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함으로써 9월 28일에는 수도 서울을 되찾았으며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하게 됐다. 서부전선에는 10월 26일 국군 6사단이 압록강 초산까지 점령해 통일을 목전에 둔 듯했으나 송시율이 지휘하는 수십만의 중공군이 개입해 UN군과 국군은 후퇴하게 됐다. 이와 같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1951년 1월 4일에 서울은 다시 적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이후 전선은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돼 현재까지 휴전 상태로 돼 있으나, 북한의 도발은 수없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전쟁 중 인명피해만도 500만명이며, 전사한 장병의 수가 13만7988명에 전 국토의 피해는 80%가 초토화돼 천문학적인 재산피해를 입었다. 우리는 비록 전쟁으로 많은 것을 잃었지만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했다. 이 모두가 6·25전쟁 당시 피 흘려 용감하게 싸웠던 국군과 UN군의 충정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의 발전은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국가재건과 경제발전에 치중했던 결과 60여년의 단기간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을 이뤄 냈다.

    전후세대들이 당시의 국가위난 전쟁 상황도 모르고 퇴색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 6·25전쟁에 참전해 겪은 당사자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되는 점이다. 호국보훈의 달 6월 6일 현충일에는 우리 모두가 현충원과 충혼탑을 찾아 고귀한 생명을 바친 호국영현들에 명복을 빌고 현재 생존해 있는 참전 용사에게 위로와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다.

    서금성 (6·25참전유공자회 진해지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