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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7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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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사람은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을 만든다- 강맑실(사계절출판사 대표)

  • 기사입력 : 2016-07-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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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광주 도청 쪽 충장로 초입에 ‘오두막’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있었다. 오두막처럼 작긴 했으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제법 고급스러운 식당이었다. 일본의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모든 집의 원형은 바로 오두막이라고 말한다. 필요 없는 공간을 하나씩 들어내다 보면 더 이상 들어낼 공간이 없는 지점에 도달하는데 그때 남는 것이 바로 진정한 집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그는 산기슭 비탈진 곳에 살림집으로 14평짜리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현대 도시 건축물에 큰 영향을 미친 르 코르뷔지에라는 건축가 역시 자신만을 위한 별장은 4평짜리 오두막으로 지었다. 자연 속 삶을 추구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4.2평짜리 오두막에서 살았다 하지 않던가. 이 오두막들은 마을과 떨어져 있어 이웃과 더불어 혹은 식구들과 더불어 사는 집의 형태는 아니다. 다만 나에게 오두막은 전 국민의 반 이상의 주거 형태가 돼버린 아파트와 대별되는 지점에서 떠올리게 되는, 그래서 늘 갈망하게 되는 주거 형태이다. 나 역시 숨 막히는 아파트의 숲에서 종종 탈출하고 싶어 오래전 서울 근교의 산 중턱에 6평짜리 농막을 지었다.

    건축가 유현준은 자신의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곳곳에서 한국형 아파트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고층 아파트는 우리에게서 머리 위의 하늘을 빼앗아 갔다. 이웃과 소통하던 골목도 없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 주변을 아파트 단지로 차단함으로써 모두가 누려야 할 자연을 독점해가고 있다. 천장 높이는 2.25m로 모두 똑같아 답답하고 변화가 없다. 이불을 말릴 수 있던 발코니, 하늘이 보이던, 자연과 호흡하는 창구였던 발코니는 알루미늄 섀시로 막혀 유리창 벽으로 변해버렸다. 어디 그뿐이랴. 한밤중에 식구들끼리 맘 놓고 크게 웃을 수 없는 곳, 함께 큰 소리로 노래할 수 없는 곳, 간짓대 세워 이불을 탕탕 털어 말리고 그 이불 사이로 아이들이 숨바꼭질 할 수 없는 곳, 일상에서 상처를 입고 잠 못 이루는 밤 발코니에 서면 위로해주는 마당 대신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곳. 이런 곳에 추억이 깃들기 어렵고 그래서 아파트는 기억을 앗아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기억을 생생하게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광주 누문동 집에 정착하기 전까지 나는 무려 아홉 번이나 이사를 다녔다. 아버지의 발령 횟수에 더해, 해남이나 성전 같은 시골로 발령받으면 광주에 셋방을 얻느라 몇 번 더 이사했던 것 같다. 일본식 관사나 양옥이 있었는가 하면 한옥도 있었고 뭐라 특징을 말할 수 없는 집들도 있었다. 주거 형태는 갖가지였지만 비록 좁더라도 언제나 마당이 있었고 나무와 꽃이 있었으며, 개와 고양이 등이 있었다. 방 한 칸에 부엌이 달린 그야말로 오두막이었던 셋방에서부터 복도가 길고 큰 방이 여러 개 있었던 일본식 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집에 살았는데, 마당 넓은 신안동 기와집에 살 때의 기억이 제일 다채롭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아홉 개의 집과 더불어 때론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때론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어린 시절에 살던 집의 순례는 곧 기억의 순례이기도 하다. 결혼해서도 두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아파트가 아닌 ‘땅 집’에서 살았다. 그 후 10년간 아파트에서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 10년은 나에게 혹독한 시간들이었다. 신기하게도 두 아이들 역시 ‘땅 집’에서의 시절은 기억이 생생한데 아파트에서의 기억은 흐릿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기억도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작은 오두막이라도 손바닥만한 마당만 있으면 100평짜리 아파트보다 공간의 확장성이 커진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 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운 집”으로 시작하는 김용택의 시, ‘그 여자네 집’처럼 찬란한 추억이 함께하는 공간은 ‘땅 집’인가 아파트인가.

    강맑실 (사계절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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