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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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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가위를 보내고- 박동소(함양군 함양읍)

  • 기사입력 : 2016-09-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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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는 추석이 절기상으로 빨랐다. 그래서인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여름과 가을 구름이 함께 떠 있었고, 들녘에는 벼들이 아직 햇볕에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들의 설렘도 없었다. 사람들 발길로 부산하던 골목에는 몇 분의 노인들만 보였다. 이 땅에 비바람, 햇볕으로 기른 오곡을 정선해 다듬고 익혀 함께 제수를 만들던 여러 가족들의 소리도 없었고, 비녀머리 곱게 한 엄마의 능숙한 손도 보이지 않았다. 앞마당에 쏟아지는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만들던 달을 닮은 송편! 지금은 먹기 편하게 모양도 제각각이다. 그때의 추석은 그랬다.

    지금은 남의 손이나 기계로 만든 제수가 대부분이고, 더하여 제상에는 농민들의 시름을 깊게 하는 수입산이 많이 올라와 있다. 열 촌수나 되는 여러 사람이 함께 제상 앞에 엎드렸다. 그곳에는 나와 함께 더불어 사는 우리도 있었다. 그곳엔 따뜻한 가슴이 있었다. 또 가족끼리 부르는 호칭만으로도 위계질서가 설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산 교육장이었고, 성인이 되어도 혼자 할 줄 모르는 지금의 아이들보다는 훨씬 빠르게 의식이 성숙할 수 있었다. 삼촌, 사촌도 보이지 않는 추석도 있으리라. 여러 가족의 만남의 장도 이미 아니다.

    우리의 어버이가 목숨같이 지켜 온 가치의 중심에는 늘 효가 있었다. 아버지의 할아버지를 향한 효는 바로 자식이 보고 이어갔다. 삼년상도 아닌 삼일상도 불편해서 이젠 화장해서 안치하는 몇 시간 후면 상주가 아니다. 방식은 어쩔 수 없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지만 지니고 있는 불변의 가치는 소중하게 지켜가야 하지 않을까. 선택의 기준이 가치의 높고 낮음에 있는 것이 아니고, 손익계산서나 편리함에 있는 오늘이다.

    한편, 여명의 진통을 겪으며 가파르게 넘어 온 우리의 현대사! 의식주의 위협을 받으면서 허리띠 힘껏 졸라매고 이룩한 오늘의 풍요가 아니던가. 수많은 도전을 이겨 낸 산업현장 역군들의 땀과 지금 나물 묶음 앞에 놓고 하루 종일 앉아 기다리는 할머니 세대가 이룩하고 지켜낸 값진 풍요가 아니던가. 그 풍요를 어떻게 지켜 갈까 싶은 염려되는 오늘이기도 하다. 2017년도 국가 전체 예산의 3분의1이 복지예산이라고 한다. 현재 가계부채를 포함해 5000조원에 이른 나라 전체의 부채가 계속 늘어 간다고 한다.

    개인의 살림도 들어오는 것보다 나가는 것이 많으면 언젠가 거덜 나기 마련이다. 소비가 미덕이라고 치부할지 모르지만, 목적 없이 새는 물과 수로를 따라 보내는 물은 다르다.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은 필요한 재화가 되어 돌아온다. 넘치는 자유와 욕구! 자기합리화에 가려진 양심! 연륜을 필요로 하는 할아버지의 고전 인문학이, 더불어 살던 우리 어버이들의 농심과 절제가 아쉬운 오늘이다.

    박동소 (함양군 함양읍)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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