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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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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나를 구한 세 가지 질문- 황선준(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

  • 기사입력 : 2016-10-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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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톡홀름대 대학원 정치이론 과목 수강 시, 내가 겪었던 일화는 우리 교육에 큰 시사점을 준다. 국가론, 정의론, 자유론, 민주주의론, 여성주의론 등 정치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들을 총망라한 그리고 읽어야 하는 교재도 많은 매우 힘든 15학점짜리 과목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공부했던 식으로 교재를 읽고 이해하고 노트에 정리하고 일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외워서 강의실에 들어갔는데 도저히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다. 교수는 판서를 하거나 설명을 하지도 않았고 우리 6명의 대학원생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이 어느 정도 소화됐다고 생각하면 다른 질문을 던지며 3시간짜리 수업을 이끌고 나갔다. 친구들 5명은 열심히 토론했고 나는 그 학기가 끝날 때까지 토론에 참여하지 못했다.

    언어적 제약도 있었지만 토론·토의식 수업방식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학점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위기감에 한 번은 우리가 토론하는 주제에 대해 교재의 페이지를 언급하며 “거기에 정답이 있는데 너희들은 교재도 읽지 않았느냐, 왜 쓸데없이 토론하냐?”고 했다. 친구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교수가 정색을 하며 “그럼 너는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나는 얼굴이 빨개지며 고개를 숙였다. 이 질문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한국에서의 공부가 정답이 있는 사실 위주의 공부고 얼마나 잘 기억하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스웨덴 교육은 사실 위주의 공부라기보다는 무엇이 문제이고 그 문제에 대해 학습자들의 생각이 어떤지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하버드대 교수를 역임한 핀란드 교육학자 살베리도 유사한 얘기를 했다.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는 한국 학생들은 거의 모든 이론을 외울 정도지만 어느 이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이 어떤지 물으면 말문이 막히거나 기껏해야 ‘좋아요’ 정도의 답이 돌아온다고 했다.

    그 수업 이후 나는 학자로서, 직업인으로서, 시민으로서 꼭 견지해야 될, 내 인생의 핵심 지렛대가 된 질문 세 가지를 터득했다.

    첫째, ‘왜?’라는 질문이다. 교수로부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란 질문을 받은 후 나는 내가 읽는 모든 책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떤 문제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리는 없었다. 이 저자는 왜 이런 주제로 책을 썼는가? 이 교수는 왜 이런 주장을 펴는가? 왜라는 질문은 모든 앎의 시작이고 근본이며 이것 없이는 어떤 호기심도 충족되지 않는다.

    둘째,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의 대답은 비판적 사고 없이 불가능하며 창의력의 잣대가 된다. 우리가 하는 많은 일들은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 분석 없이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을 위한 자료 개발은 해당 학생들이 어느 학교급에 많은지, 어느 지역에 많은지, 어떤 부모 배경을 가졌는지 그리고 학급편성 및 기존의 자료에 대한 분석 없이 새로운 자료를 만들어 낸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무엇이 문제인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끊임없이 하게 해야 한다.

    셋째,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다. 21세기는 영웅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한 명의 뛰어난 인물이 나라를 먹여 살리는 시대도 아니다. 투철한 민주주의 이념으로 무장된 보통 시민이 다른 시민을 배려하고 다른 시민과 협력하며 공동체를 이뤄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시대다. 이 셋째 질문이 이런 시대에 가장 중요한, 자신과 사회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그리고 한 명의 주체적 인간이 되는 데 필수불가결한 질문이다.

    나는 이 세 가지 질문이 우리 교육에서도 가장 핵심적 질문이 되어, 우리 아이들이 비판적 사고를 견지한 호기심과 창의력 강한 주체적인 민주시민이 되기를 희망한다.

    황선준 (경남교육연구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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