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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취임 때 밝힌 ‘국민행복’을 위한 선택은- 김재익(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16-11-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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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서울 도심을 가득 메운 100만 촛불집회는 단순히 집회 그 이상을 넘어 감동이었다. 지금까지 대규모 집회 하면 으레 폭력적이었고 여기에 맞서 공권력이 진압에 나서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그런 자극적인 집회를 벗어나 100만이 넘는 참가자가 평화적인 집회를 이끌어냈다. 이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나타냄으로써 그동안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무너질 대로 무너진 국민들의 자존감을 조금이나마 회복한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표출된 민심은 한 가지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下野)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박 대통령이 지난 4년간 국정 농단과 헌정 혼란 사태의 직접적인 몸통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것이다. 100만명의 목소리가 모든 국민을 대변한다고 확정지어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지지율이 5%에 미치지 못하는 등 국민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이번 경우는 대다수 국민의 목소리라고 여겨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최순실 사태가 본격 불거지기 시작한 20여 일 전만 해도 박 대통령은 선택의 범위가 넓었다. 책임총리, 거국내각 구성 후 2선 후퇴 등 여러가지 선택 가운데 대통령이 많이 내려놓는 방법을 택했다면 정국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위기만 넘기고 임기를 채우려는 권력욕이 앞서 내려놓질 못했다. 국회까지 방문해서 제안했던 ‘국회 추천 총리’도 총리 권한을 명확히 밝히지 않아 물 건너갔다.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 비리가 추가로 밝혀질 때마다 국민들의 분노는 타올랐고 국민의 이름으로 하야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미적거리는 사이에 박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하나밖에 없다. 모든 미련을 버리고 권력을 내려놓는 일이다.

    국민들의 요구는 하야이지만 이는 정국의 혼란을 더 키울 수도 있다. 대통령이 하야로 인해 궐위되면 60일 이내 대선을 치러야 한다. 급히 치러지는 대선은 또 다른 좋지 못한 대통령을 뽑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하야가 최선의 대안은 아니다. 또 다른 방법은 탄핵이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면 국회의 고유권한인 탄핵을 추진해야 하지만 헌법재판소 판정까지 최장 6개월이 걸린다. 박 대통령은 이미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다. 국정 동력이 완전히 상실된 상태에서 6개월은 국정 혼란만 길어질 뿐이다.

    박 대통령은 이제 ‘질서 있는 퇴진론’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남은 1년 3개월여의 임기에 연연하지 말고 모두 내려놓겠다는 의사를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대통령이 퇴진선언을 한 뒤 국회가 합의해 새 총리를 추천하면 임명한다. 새 총리는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한 후 정치 일정을 마련하는 것이 질서 있는 퇴진이다. 국정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박 대통령은 임기는 단축되지만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춘 퇴진이 된다.

    이런 퇴진의 바탕에는 야당이 정국을 수습하려는 책임 있는 자세가 수반돼야 한다. 대통령의 무조건 퇴진만 외칠 게 아니라 구체적인 정국수습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무조건 퇴진은 분노한 국민들이 할 얘기다. 정치권은 더 나아가 민심의 흐름을 파악해 현실 정치에서 효과적인 방안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한 달 가까이 지속되면서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완전히 상실됨에 따라 행정부도 공백 상태에 빠져들었다. 청와대의 영(令)은 안 먹히고 공무원들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정치권은 비상시국을 맞아 초당적 비상체제를 가동해 힘을 모으기는커녕 정치 공방만 주고받으면서 차기 권력 투쟁에 더 몰두하고 있다. ‘트럼프 시대’에 따른 외교와 북핵위기의 안보, 추락하는 국내 경제 등 현안이 산적한데도 국가 컨트롤타워는 실종 상태이다.

    박 대통령은 3년 9개월 전 취임사에서 “나라의 국정 책임은 대통령이 진다”면서 “국민 행복을 위해 모든 걸 바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제 그 국가와 국민을 위해 결단을 미뤄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은 이미 아름다운 퇴진을 할 기회는 놓쳤다. 지금이라도 덜 추하게 권좌에서 내려서는 방법을 택하시라.

    김재익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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