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9월 2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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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재즈듀엣 수니킴-김성환 씨 부부

아내 노래하고 남편 반주하는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리 들을래요
지리산 화개골에 정착한 재즈듀엣 부부

  • 기사입력 : 2016-12-2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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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하늘에 비낀 노을 바라보며/ 시인의 마을에 밤이 오는 소릴 들을 테요~’

    읊조리는 듯한 정태춘의 목소리가 아닌 거친 탁성으로 내지르는 ‘시인의 마을’을 들으며 지리산 골짜기로 차를 몰았다. 황무지처럼 메마르고 쓸쓸하면서도 때로는 거센 파도처럼 몰아치는 개성 강한 음색에서 가수 한영애씨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서양화가 구윤선 작가 작업실에서 처음 만나 선물받았던 CD 한 장이 기꺼이 기자를 지리산으로 향하게 했다. 1년여 전 하동군 화개면 단천마을에 정착한 재즈듀엣 수니킴(50·여·김연순)-김성환(60)씨. ‘한라산 수니’란 예명으로 제주도에서 활동해왔던 부부가 지리산으로 둥지를 옮긴 사연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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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80년대 통기타로 데뷔

    서울 태생인 김성환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73년 열여덟 어린 나이에 데뷔, 들국화 전 멤버인 주찬권(드럼), 최구희(기타)씨와 79년 그룹을 결성해 음악활동을 해왔다. 충남 논산 출신의 수니킴 역시 스무 살 되던 86년 통기타 가수로 데뷔, 작곡가 백창우씨 등과 ‘소리나누기’란 이름으로도 활동했다. 성환씨는 동네 형들의 기타 연주를 어깨너머로 배운 철저한 야전형이라면, 수니씨는 정통으로 피아노를 수학하고 가톨릭 성가대에서 성악을 배운 기초가 탄탄한 뮤지션으로 대별된다. 둘은 89년 12월 경기도 성남시민회관 공연서 처음 만나 다음해 9월 결혼, 주로 수도권서 음악활동을 했다.

    “1990년대만 해도 서울, 성남, 수원, 광주 등 수도권에는 라이브 카페가 전성기여서 하룻밤 8군데나 뛸 정도로 인기와 수익이 많았어요. 하지만 음악시장에 연예기획사가 본격 개입하면서 언더가수의 메카인 미사리카페촌이 무너지더라고요. 미사리 붕괴는 언더가수의 직장만 잃게 한 것이 아니라, 열정만으로 음악활동을 해온 언더가수들의 질서와 토대를 잃게 했습니다. 비정한 사업 논리에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도시생활에 회의감마저 들면서 모든 활동을 접었죠. 힐링할 곳이 절실했는데, 한라산이 우리 부부를 안아줬습니다.” 성환씨는 그때를 97년 초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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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봄 수니킴-김성환씨 공연 모습./김성환씨/


    ◆한라산 품에 안기다

    제주 사는 친구의 권유로 성환씨가 먼저 제주로 내려갔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맞춤한 집을 발견하고 가족들도 불렀다. 그리고 음악활동을 재개했다.

    “용담해안도로에 카페가 몇 있었는데, 그중 한 곳에서 우리 부부가 공연을 했죠.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이었던지 금방 입소문이 나면서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나중 이 일대 카페촌이 조성되는 계기가 됐죠. 이듬해인 98년 전 재산을 털어 직접 조리하고 서빙하며 공연도 하는 라이브카페를 개업했죠. 모두 망했다는 IMF 외환위기 때 우리는 오히려 가장 많은 돈을 번 시기였습니다.”

    성환씨 부부는 2000~2002년 어머니 봉양을 위해 경기도 분당으로 잠깐 돌아왔지만, 도시생활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또다시 제주로 내려갔다. 이때부터 롯데호텔과 풍림리조트, 제주켄벤션센터 등의 전속가수로 안정적인 활동을 하면서 팬들의 도움으로 리메이크 음반 ‘수니-한라산’을 출반하기도 했다.

    그러나 육지에서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외동딸의 바람 때문에 2006년 11월 광명시로 이사, 10년 가까이 카페 등을 운영하면서 딸의 학업을 뒷바라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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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천마을 집 마당에 선 수니킴-김성환씨.


    ◆어머니산 지리산으로

    성환씨 부부는 딸이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 귀촌하자고 마음먹었다. 2007년 화개골 차축제 공연 때 찾았다 첫눈에 반해버린 화개골을 염두에 두고 지난 몇 년 동안을 땅을 물색했으나 인연이 닿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산청과 남원으로 넘어가 찾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전북 남원 실상사 부근 한 마을의 빈집을 소개받아 계약하려던 날, 인터넷에서 화개면 단천마을의 빈집을 발견했다.

    성환씨는 “우리 부부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데 익숙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날 아침 단천마을에 빈집이 4채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모든 게 조화였던가 봅니다. 제가 지리산 뱀사골 와운마을의 500년 된 할머니소나무에 머리를 기대어 ‘제발 (지리산) 품에 안기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었거든요. 아마 한라산 할머니가 ‘저 부부는 고생 많았으니 터를 마련해 주세요’라고 지리산 어머니에게 카톡을 보낸 것 같습니다”라며 웃었다.

    부부가 사는 단천마을은 지리산 남부능선 해발 500m에 20가구가 자리 잡은 곳이다. 늦가을 맑은 계류에 물든 단풍색이 아름답다는 뜻에서 단천(丹川)이라고 불리는데, 가까이 최치원이 신선이 됐다는 득선처의 전설이 있는 곳이다.

    “지리산은 한라산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졌어요. 우리는 찻잎을 따서 녹차를 만들어 마시고, 텃밭에서 곰치·당귀를 키우며, 표고버섯도 재배하고 있어요. 어머니 같은 넉넉함과 따뜻함이 정말 좋아요.” 수니씨의 얼굴이 환하게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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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니킴-김성환씨 부부가 화개면 단천마을 집 안방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실력은 언더가 아니다

    수니씨는 재즈뿐만 아니라 포크송, 발라드, 올드팝은 물론 트로트까지도 가능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유하고 있다. 중성적인 그녀의 목소리는 흑인의 그것처럼 호소력이 짙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인 창법과 깊은 울림은 처음 들어보는 이들에게도 쉽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비록 방송에 출현하는 유명 가수가 아닌 소위 언더가수이지만 실력은 결코 언더가 아니다.

    “‘이렇게 가창력이 좋은데 왜 데뷔하지 못했나?’란 질문을 자주 받아요. 한때는 일본 진출이란 달콤한 유혹도 받았죠. 인연이 안 된 것 같아요. 원래 큰 욕심 안 내다 보니 회한은 그리 크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살 수 있다는데 만족하며 살다 보니 연연해하지 않았나 봐요. 유명가수가 맞고, 내가 틀린 것은 아니잖아요. 단지 다르게 살 뿐이지”라며 수니씨는 담담해했다.

    “조금 다른 얘긴데요, 음악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94년께 모 방송국 가수 선발대회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떨어졌어요. 그런데 방송국 관계자가 ‘노래는 최고 잘 부르는데, 결혼을 해서…’라며 탈락 이유를 말해 주더라고요. 당시 실망감과 좌절감이 컸죠. 그러나 몇 년 지나 보니 오히려 나의 길을 또렷하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재즈란 소비 지향적인 음악이 아니고 음악의 본질, 삶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거든요.”

    가수란 직업적으로 대도시에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지역 가요계의 경우 트로트 가수가 대부분인데, 재즈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가 추가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직은 낯선 곳이지만, 가장 낮은 자세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라며 “빈한하게 살더라도 구차하게 살지 않으면 되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했다.

    성환씨 부부는 인근 도시에 연습실을 겸한 카페를 계획하고 있다. 단천마을은 대도시 달동네 못지않게 주택이 밀집돼 있다 보니 연습에 제약이 많이 따른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들의 음악을 지역민들에게 소개하는 무대로도 활용할 생각이다. 그리고 많이 늦어진 창작곡 음반도 출반할 예정이다. 24시간 함께 있다 보니 휴대폰도 1대뿐이라는 재즈부부. 아내는 가수로, 남편은 반주자와 매니저로 역할을 달리하지만, 둘은 한곳만을 바라보고 산다.

    글·사진= 정오복 기자 obokj@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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