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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메릴 스트립의 용기- 신형철(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7-01-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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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특검이 밝힌 바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창작과비평’이나 ‘문학동네’ 같은 좌파 문예지들만 지원하고 건전 문예지들은 지원을 안 해서 건전세력이 불만이 많으니” 해당 출판사에 대한 지원을 삭감하라는 지시를 직접 했다고 한다.

    ‘좌파 문예지’ 제작자들을 감옥에 처넣지 않고 그저 돈줄만 죄었으니 차라리 고맙다고 해야 할까. 사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반대자들을 배제(exclusion)하는 정도가 아니라 절멸(extermination)시켜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배제(exclude)에는 포함(include)이라는 반대말이 있지만 절멸(exterminate)에는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끝장내버리는 (terminate) 일이다.

    저들을 ‘괴물’이라고 간주해 버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나를 그들로부터 완벽하게 구별/구원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윤리적 판타지다. 다른,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끔찍한 이들에게 나도 그런 욕망을 품는다. 비근한 예로 나는 광화문에서 단식 중이던 세월호 참사 유가족 앞에서 피자를 시켜 먹는 이들을 보며 저들을 절멸시켜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나는(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인정과 공존의 윤리를 교육받은 민주 시민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감히 그런 욕망을 실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질 수 없으므로 그러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면?

    그러므로 권력은 위험한 것이다. 배제 혹은 절멸에의 욕망을 강하게 품고 있는 자가 권력을 가지게 될 때 특히 그렇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언론이 필요한 것이다. 권력자가 자신의 욕망에 패배하지 않도록 그의 욕망을 대신 감시해주는 존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난 8일 골든 글로브 시상식장에서 메릴 스트립이 그의 놀랍도록 용기 있고 지적이며 감동적인 수상 소감을 통해 내게 새삼 가르쳐준 사실이기도 하다. 5분 30초 동안 진행된 그 연설은 구조적으로 완벽했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거의 모든 메시지를 담고 있었으므로 여기에서 소개할 가치가 있다.

    메릴 스트립은 먼저 ‘할리우드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그는 현장에 있는 여러 배우들의 출신 지역과 성장 배경을 다정한 어조로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단지 예닐곱 명만을 언급했을 뿐인데도 그 면면은 다양했다. 차이를 차이 자체로 존중하는 그 호명만으로도 이미 뭉클했다. 그 호명의 끝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할리우드는 다양한 아웃사이더와 외국인들로 들끓는 곳입니다. 이들을 다 내쫓으면 미식축구와 격투기 외에는 볼 것이 없겠죠.” 트럼프의 배타주의를 비꼬는 그의 말에 박수가 쏟아졌다.

    이어 그는 ‘배우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배우가 하는 유일한 일은 우리와 다른 사람의 삶 속으로 들어가서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메릴은 작년 최악의 연기로 트럼프가 장애인 기자를 흉내 내던 순간을 꼽았다. 타자에 대한 공감을 유도하는 것이 연기의 본질인데 트럼프의 그것은 정반대의 목적에 기여하는 연기였기 때문이라는 것. 다음과 같이 말할 때 메릴은 조금 울먹였다. “그 연기는 제 가슴을 무너지게 했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화가 아니라 실제였으니까요.”

    그러므로 그의 연설이 ‘권력이란 무엇인가’로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혐오는 혐오를 부르고 폭력은 폭력을 선동합니다. 권력을 가진 자가 타인을 괴롭히기 위해 제 지위를 이용할 때, 우리는 모두 패배할 것입니다.” 단 1초도 버릴 것이 없는 5분 30초의 연설이었지만 나는 특히 이 문장에 밑줄을 그어 우리의 대통령에게 보내드리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메릴은 ‘언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말했지만 그 말을 요약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점을 곱씹고 싶다. 우리의 언론이 지금 열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물러나는’ 권력이지만, 그날 메릴 스트립이 무대에서 맞서고 있었던 것은 ‘들어서는’ 권력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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