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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김흥우 촌장

“평생 모은 공연자료로 ‘예술의 섬 남해’ 만들고파”
남해로 간 수집광… 희곡작가이자 연극인으로 살다

  • 기사입력 : 2017-03-2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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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 섬의 한복판에 위치한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에는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살아있는 역사 김흥우(75) 촌장이 있다. 희곡작가이자 연극인으로 동국대 명예교수이기도 한 김 촌장은 지난 2008년 자신이 평생 모은 우리나라 공연예술 자료를 모두 싸들고 남해로 이주했다.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생활하며 수많은 스타 배우들과 감독을 배출해 온 김 촌장이 어떻게 남해까지 오게 됐을까.

    ◆“계획 세우면 철저하게 지킨다”

    김 촌장의 좌우명이다. 초창기 그의 꿈은 극작가와 연극 기획·제작이었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극을 만들고 공연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연극계의 산 역사인 극단 신협(新協)에 들어가 10여 년간 대표를 맡았다. 어릴 적 꿈을 이룬 ‘드문’ 경우다.

    다음 목표는 후진 양성이었다. 모교인 동국대 연극영상학부 교수, 예술대학장으로 20여 년간 재직했다. 그의 무수한 제자와 또 그들의 제자들이 우리나라 연극, 영화의 주역으로 현장과 강단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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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흥우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 촌장이 전시된 공연자료들을 설명하고 있다.

    ◆“수집광입니다”

    “여행에서 돌아가는 길에는 남들보다 항상 보따리가 훨씬 컸습니다. 일본에서는 세관에 걸려 일행이 2~3시간 늦게 출발하기도 했어요.”

    김 촌장의 취미는 공연예술자료와 탈 수집이다. 어릴 적 서울 우이동에 살았는데 육당 최남선 선생의 손자인 최학주씨가 그의 어린 시절 친구였다. 최남선 선생의 집에는 서적, 악기 등 수많은 자료들이 방 3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유명해지려면 수집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늘 남아 있었다.

    희곡작가와 연극인으로 활동하며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자료 수집을 시작했다. 순수한 호기심 말고도 공부와 후학 교육이 동기였다. 특히 1920년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공연예술사의 귀한 자료가 이대로 사장될까 두려워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포스터, 팸플릿, 서적, 비디오 등 극단 활동을 하며 모은 수많은 공연예술 자료가 그의 거처에 진열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일행이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고를 때 그의 배낭 속에는 탈, 인형 등 진귀한 문화예술품들이 들어갔다.

    “처음엔 그렇게 많이 모은 줄 몰랐습니다. 한 해 한 해 모으다 보니 보관할 공간이 없어졌어요. 총 25만 점 정도 되더라구요.”

    자연스럽게 그의 다음 꿈은 그동안 모은 수많은 자료를 한 곳에 소장할 수 있는 전시관을 갖는 것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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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로 가다

    “서울에서는 멀지만 그래도 국내 최초로 본격 공연예술자료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껴요.”

    2000년대 초 김 촌장이 처음 자료를 기증하려던 곳은 모교인 동국대였다. 그러나 그 많은 자료를 보관하기에는 교정 내 공간이 부족했다. 이후 국내 각지에서 제안이 들어왔으나 딱히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없었다.

    그러다 만난 이가 당시 하영제 남해군수였다. 그때 김 촌장은 월간잡지인 한맥문학에 ‘한국의 놀이와 축제’를 연재 중이었다. 한맥문학의 김진희 대표가 남해 출생이었다. 뛰어난 문인이기도한 김진희 대표의 소개로 김 촌장은 하영제 군수를 만났다. 하 군수는 전시관을 찾고 있던 김 촌장에게 아무 걱정 말고 남해로 오라 했다.

    사전 답사 차 남해를 찾은 김 촌장은 마땅한 장소를 찾기 위해 폐교 10여 곳을 하나씩 둘러봤다. 그렇게 여러 학교를 둘러보던 중 오게 된 곳이 남해군 이동면에 위치한 다초초등학교였다. 오래된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고, 아름답게 배치된 정원이 참 좋았다. 학교 바로 옆에 잔디구장도 있고, 남해 섬의 중심에 있어 이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영제 군수의 생각도 같았다. 2008년 1월 7일, 우리나라 100년 공연예술사의 소중한 자료와 함께 김 촌장이 남해로 이사를 왔다. 그의 세 번째 꿈이 이뤄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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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공연예술사의 보고

    2008년 5월 15일 개관한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은 약 5000만㎡ 부지에 다초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2층 건물로 꾸며졌다.

    도서관과 수장고에는 서적 2만5000점, 팸플릿 12만점, 희곡·시나리오 1만5000점, 사진 4만5000점, 비디오·DVD 7000점, 포스터 4000점, 탈 2000점, 의상 소품 2만5000점 등 김 촌장이 평생 모은 방대한 공연예술 자료가 소장돼 있다.

    1층 복도와 2층 공간에 조성된 전시관과 체험실에는 김 촌장의 자료를 활용해 배우 3000인전, 한국영화 포스터전, 세계 40여 개국 탈 전시, 한국 연극 100년전, 한국뮤지컬전, TV드라마 무신 의상전 등 연중 각종 전시회가 개최된다.

    다목적 극장도 마련돼 있다. 100여 석 규모의 다초실험극장에는 계절마다 개최되는 세계영화감상회, 5월 남해섬어린이공연예술제, 7·8월 남해섬공연예술제, 12월 송년공연예술제 등이 개최된다. 대도시에서 실제 공연되고 있는 수준 높은 공연작품들을 선보여 군민과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의 한 곳 한 곳, 한 작품, 한 작품, 모든 것에 9년 전 남해로 정착해 줄곧 번듯한 전시관과 극장 설립에 몰두해 온 김 촌장의 땀과 열정이 배어 있다.

    ◆무대 위, 꿈은 계속된다

    공연예술의 소재가 무궁무진하듯 김 촌장은 지금도 많은 꿈을 꾸고 있다. 국제탈공연예술촌에 보관된 자료들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그 첫 번째다.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남해국제탈공연예술촌에 소장된 자료를 검색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현재 서울연극협회와 국립극장 박물관, 한국공연예술자료관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야외전시관과 8개 마을 공연예술촌화, 간행물 제작 등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해 준 남해에 대한 애정 어린 바람도 있다.

    “남해 전체를 공연 예술의 섬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여기 있는 자료 분량이면 남해 전체에 펼쳐 놓을 수 있습니다. 이 자료들로 남해 곳곳을 특화된 마을로 개발하고 싶습니다.”

    김 촌장의 무대는 아직 많이 남았다.

    글·사진= 김윤관 기자 kimyk@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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