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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51초의 무언(無言)’- 이준희 문화체육부 부장

  • 기사입력 : 2017-07-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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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1월 12일 미국 애리조나 주 남동부의 투산 지역에서 발생한 총기사건의 추모식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희생자 중 한 명인 크리스티나의 이름을 언급하던 중 갑자기 연설을 멈췄다. 오바마의 시선은 허공을 향했고, 감정을 추스르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51초의 정적이 흐른 뒤 다시 연설을 이어 나갔고 그의 무거운 음성은 추모객들의 가슴을 향해 퍼져 나갔다.

    ▼‘51초의 무언(無言) 연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미국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 미국의 언론들은 ‘국민과 말만 주고받은 게 아니라 마음을 나눴다’ 등 그의 언품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침묵의 가치는 늘 귀하게 여겨져 왔다. ‘침묵은 금이다’라는 속담에는 그만큼의 깊은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구화지문(口禍之門)이란 말이 있다.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 된다’는 뜻으로 말을 삼가고 경계하라는 뜻이다. 말은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다툼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조선시대 문인화가 김유근은 “말하지 않아도 뜻을 전할 수 있으니 침묵한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나 자신을 돌아보건대 침묵하면 세상에서 화를 면할 수 있음을 알겠다”는 글을 남겼다.

    ▼침묵의 힘은 가히 대단하다. 침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의미와 기치를 함축하고 있으며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더 무겁게 받아들여진다. 오바마는 ‘51초’ 동안 말을 하지 않았지만 희생자 가족의 아픔을 처절하게 느꼈다. 이제 휴가철이다. 휴가를 의미하는 바캉스는 ‘텅 비어 있다’는 라틴어 바카티오에서 유래한 말이다. 바캉스는 무작정 노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는 일이다. 쉼이 필요한 것은 말도 마찬가지다. 어디서나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때에 말을 거두고 진심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숙성되지 못한 말은 오히려 침묵만 못하기에….

    이준희 문화체육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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