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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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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그랜드 아트 투어’를 가다 (2) 독일 카셀 도큐멘타

작은 도시, 그 삶의 현장에 녹아든 예술
나치정권의 과오를 반성·극복하는 진지한 미술행사
30개 넘는 장소에 330여명의 작품 1000점 이상 전시

  • 기사입력 : 2017-07-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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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뮌스터에서 버스로 3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카셀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차분하고 아름다운 공원을 중심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작품을 즐겼던 뮌스터와 달리 카셀은 뭔가 복잡한, 그래서 살짝 긴장된 느낌이었다. 이는 아마도 카셀도큐멘타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한 결과인 듯했다. 1955년 나치 정권의 정치적 문화적 과오를 반성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카셀 도큐멘타는 이후 가장 진지한 미술행사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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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이에노이에 갤러리.



    14회째를 맞이하는 는 쿤스트할레 바젤 관장을 역임한 아담 심칙(Adam Szymczyk)이 예술감독을 맡아, 서른 개가 넘는 장소에 330명(팀)이 넘는 작가들을 불러들였다. 연계된 작품들까지 포함하면 1000점이 훌쩍 넘는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규모의 전시를 하나의 글로 드러내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니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는 것으로 지면을 채우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소를 꼽으라면 카셀 국립 박물관인 프리데리치아눔(Fridericianum)과 토르바헤(Torwache)이다. 가상의 파르테논 신전을 만들어 전 세계의 금서를 채우는 마르타 미누힌(Marta Minujin)의 <책의 파르테논> 맞은편에 위치한 프리데리치아눔(Fridericianum)에는 그리스 국립 현시대미술관 (EMST)의 소장품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이런 일시적인 대규모 전시에 특정 미술관의 소장품 전시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전시 의도는 명확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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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타 미누힌 作 ‘책의 파르테논’



    <아테네에서 배우자>라는 도큐멘타의 주제에 맞춰 1960년대 이후 현(시)대미술의 흐름을 미술관 소장품으로 보여줌으로써 미술관 소장품 정책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더불어 이 소장품들이 국가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디아스포라를 이야기하고, 인간 존재와 신화를 탐구함은 물론 개별적 존재와 집단적 존재를 사유하는 작품들이었기에 카셀도큐멘타의 역사적 방향과도 일치했다. 개인적으로는 김수자 작가의 <보따리>가 반가웠으나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색상을 띤 보따리가 오리엔탈리즘의 연장선에서 소환된 것 같아 살짝 불편하기도 했다.

    토르바헤(Torwache)라는 장소도 흥미로웠다. 특히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이브라힘 마하마(Ibrahim Mahama)의 누더기 마대천은 시각적으로 충격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역의 이중성 즉 소유와 강탈, 이주 문제, 그리고 위장과 가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실내에 전시 중인 오스카 한센(Oskar Hansen)의 파시즘 희생자를 위한 기념물 아카이브와 에디 힐라(Edi hila)의 회화는 주도적인 정치 조직이 도시계획에 개입할 때 어떻게 이데올로기적 흔적을 남기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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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와 케이 작품.



    도큐멘타 할레 앞에 설치된 히와 케이(Hiwa K)의 작품도 흥미롭다. 쿠르드족 출신인 작가는 자신이 난민 시절 살았던 콘크리트 관을 차곡차곡 쌓아 그 안에 거주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10여 분 거리의 두부공장(Tofufabrik) 지하에서는 이세이 사가와(Issei Sagawa)라는 일본인이 파리 유학 시절 인육을 먹은 살인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이 상영되고 있었는데, 그 음산한 분위기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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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환(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사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주제를 풀어내는 비엔날레급 행사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차이는 담론 수준이라기보다는 행사를 운영하는 조직의 마인드, 행사에 동참하는 시민사회와 민간 및 공공기관의 태도다. 400억원이라는 예산도 대단하지만, 그것보다는 카셀이라는 작은 도시가 이 행사를 다 같이 치러내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서른 개가 넘는 사이트를 전시 공간으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그 증거다. 예술이 삶의 현장에 녹아들어 그 장소의 성격과 연동해서 전시되면 그것은 어떤 예술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현시대 미술이 시각적 쾌와 이야기 전달을 동시에 추구해야만 한다면 이러한 전략보다 영리한 방법은 없을 것이다. 카셀이라는 도시는 이를 아주 자연스럽게 실행하고 있었다.

    김재환(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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