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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표준어- 김희진 정치부 기자

  • 기사입력 : 2017-09-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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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학생 때의 일이다. 우리 반에 하얗고 예쁜 얼굴을 가진 여학생이 전학을 왔다. 도시에서 왔다는 사실에 외모도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지만 무엇보다 아기 고양이 털을 만지는 것 같이 부드럽고 간질간질한 느낌이 드는 그 아이의 서울말은 사춘기 촌(?)소녀들의 선망이 됐다. 어느샌가 나도 그 말투를 흉내내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 나도 방송뉴스를 하면서 서울말로 통용되는 표준어를 구사하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나는 에피소드다.

    ▼국립국어원 표준어 규정에 따르면 표준어란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현대 서울말’이다. 한때 이 규정을 놓고 왈가왈부하기도 했다. 지난 2009년 해당 규정이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이 제기됐다. 합헌 결정이 났지만 위헌이라는 소수의견도 2명 있었다. 지역어는 각 지역의 문화유산이며 이를 표준어 범위에서 배제함으로써 지역민에게 문화적 박탈감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대의견이었다.

    ▼사투리는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로 규정돼 있다. 최근 살충제 계란과 화학성분 생리대로 질타를 받고 있는 류영진 식약처장이 지난달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부터 사투리를 지적당했다. 위원장은 ‘잠깐만예’가 아니라 ‘잠깐만요’나 ‘잠깐만 기다리십시오’라고 해야지 사투리부터 쓰니까 이상해 보인다는 논리를 폈다. 그는 사투리 이미지가 강한 영남권에 기반을 둔 정당 소속이며 그의 고향 강원도에서는 매년 사투리경연대회가 열린다.

    ▼‘사투리=이상함’이라는 사고 구조는 우리나라 정치·사회·문화·경제 각 분야에 만연해 있는 ‘중앙-지방’ 이분법적 고정관념이 한몫했을 거라 생각한다. 경상도나 전라도, 충청도에서 보면 서울도 우리나라의 한 지역일 뿐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인구 절반은 서울이 아니라 지역에 살고 있고 지역어, 사투리를 쓴다. 지방분권이 시대 화두로 떠올랐고, 그것을 헌법에 명시하자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지금, 국회에서 생긴 사투리 면박 해프닝이 더욱 유감스럽다.

    김희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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