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30일 (화)
전체메뉴

경남 지자체 ‘보행환경 개선’ 의지도 없고 돈도 없다

[기획] 길 빼앗긴 보행자들 (중) 원인
창원시, 예산 없어 3년째 제자리
경남도 등 도내 대부분 지자체 추진의지 없고 자체 사업도 전무

  • 기사입력 : 2017-12-04 22:00:00
  •   

  • 창원 상남동·합성동 등 도내 번화가 곳곳에서 보행자들은 쾌적하고 안전하게 걸을 권리를 위협받고 있다. 이 때문에 창원시 등 일부 지자체는 보행권 확보를 위해 환경개선 사업을 수년 전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예산 확보가 어려운데다 추진 의지마저 잃어 사실상 답보 상태다. 자동차 위주의 교통체계도 당장 뚜렷한 해법은 요원하다. 길을 빼앗긴 보행자들을 위한 정책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메인이미지
    4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신월동 은아그랜드타운아파트와 상남동 상남시장을 오가는 보행신호가 짧아 보행자들이 빨간 신호로 바뀌었는데도 횡단보도를 걷고 있다./전강용 기자/



    ◆정부만 쳐다보는 지자체= 창원시는 지난 2014년부터 자동차 중심에서 보행자 중심으로 도시 환경을 전환하기 위해 ‘보행환경 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자리걸음이다. 유동 인구가 많은 상남상업지역과 마산회원구 마산시외버스터미널(합성옛길)도 이 사업에 포함됐지만, 예산 확보의 어려움으로 답보 상태다. 개선 사업에는 두 곳을 비롯해 △마산합포구 경남대 입구 상업지역 △의창구 봉곡동 상업지역 △진해구 경화동 중부시장 △마산회원구 석전초교~경남은행 등 6개 지역이 포함됐지만, 사업이 완료된 곳은 마산회원구 석전초교~경남은행 구간 단 1곳에 그쳤다. 창원시에 따르면 행정안전부가 공모하는 보행 환경 개선지역으로 해당 사업이 선정되면 국비 50%, 시비 50%를 투입해 진행되지만, 석전초교 인근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공모 사업에 선정되지 못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시는 보행로 확보가 시급한 상남상업지역과 합성옛길에 대해 시 예산을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정비 계획은 현재까지 없는 상태다. 성산구청 안전건설과 관계자는 “상남동 번화가의 경우 현재 뚜렷한 정비계획은 없지만, 보행자 우선이라는 원칙에 따라 장기적인 검토를 해보겠다”며 “현장조사를 몇 차례 해봤지만, 새로 인도를 만들거나 정비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도시가 조성된 지 20년 정도 되어가면서 차 없는 거리나 일방통행 등 여러 대안이 나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옛 자료들을 찾아보고 지금 단계에서 다시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

    경남도에서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지구 단위의 보행권 개선 사업도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도의 최근 3년간(2014~2016년) 예산서를 살펴보면 ‘안전한 보행환경조성 지원’ 항목으로 매년 10억원씩 지출됐지만, 이는 행안부의 공모사업에 기초 지자체가 선정되면 도비를 지원해주는 방식에 불과하다. 도가 계획하고 있는 보행권 증진 관련 사업으로는 내년 ‘마을 주민 보호구역 정비사업’이 있지만, 이는 지방도 인근 마을의 보행로를 설치·정비하는 데 국한돼 있어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지의 보행로 개선 사업은 현재로서는 없는 상황이다. 도 관계자는 “상남동, 합성동 등 지구 단위로 보행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에 지원되는 예산은 현재로서는 없다”며 “마을 정비사업의 성과가 있다면 추후 시군에서 관리하는 도로로 사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 의지조차 부족= 보행권을 보장받기 위한 시민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기초 지자체의 의지는 이와 상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도 등에 따르면 2012년 제정된 ‘보행안전 및 편의 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행권 관련 조례를 두고 있는 지자체는 18개 시·군 중 창원·거제·통영시 등 3개 지자체에 불과하다. 이들 지자체는 보행자의 안전과 편의 증진을 위한 실태 조사를 통해 정기적으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보행 환경 개선사업에 대해 평가하게 되지만, 나머지 지자체는 이 같은 노력마저 하지 않는 실정이다.

    보행을 가로막는 불법 광고물 단속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이동식 광고물인 ‘에어 라이트’가 불법 설치돼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김해시 외동 먹거리 1번지 골목에 대한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남도는 김해시 내외동 인근을 미풍양속 보존 등을 위해 ‘옥외 광고물 등 특정구역’으로 지정했지만, 먹거리 골목은 이 구역에서 제외돼 있다. 김해시는 지난해 7월과 올해 초 단속을 통해 보행 환경을 가로막는 광고물을 강제 철거했지만, 이후 단속 인력 부족과 업주의 비협조 등으로 강력한 단속을 하지 못하고 계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보행권리 확보 단기적으로 풀기 어려워= 차량 우선의 교통신호체계 역시 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보행자들이 횡단보도 보행 시간이 촉박하다고 호소해도 차량 통행량을 감안해 무작정 보행신호를 늘릴 수도 없다. 횡단보도의 보행 시간은 경찰청의 교통신호기 설치·관리 매뉴얼 기준에 따라 녹색불이 켜지는 최소 시간이 정해지고, 차량 통행량을 고려해 조정된다. 이 매뉴얼에 따르면 횡단보도 보행시간은 초기진입시간 등 여유시간 4~7초에다 횡단보도 보행자 평균 속도 1m당 1초씩을 합산한다. 예외적으로 어린이나 장애인, 노인 등 교통약자들의 이동이 많아 배려가 필요한 장소는 보호구역으로 정해 1m당 1초보다 완화된 0.8m당 1초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14m의 횡단보도의 경우 일반적으로 보행시간은 19초가 주어지지만, 보호구역일 경우에는 23초로 조금 더 길어지는 방식이다. 문제는 일반 기준의 보행시간도 현실적으로 촉박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데다, 이 기준에 따른 대부분 횡단보도를 교통약자들도 함께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청 교통운영과 관계자는 “매뉴얼은 교통약자들이 어느 횡단보도를 이용하더라도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보고 만든 최소 기준이다”면서 “전국 도심의 차량 통행속도를 낮추기 위한 방안이 추진되는 등 정책적으로 보행자를 더 배려하려 하고 있다. 횡단보도뿐 아니라 보행자 편의에 대해서는 추후 고령화를 반영하고 정책적인 연구와 함께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기원·김재경 기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 관련기사
  • 박기원,김재경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