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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장군의 웅대한 기상- 변종현(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 기사입력 : 2018-05-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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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이(南怡, 1441∼1468)는 웅대한 기상을 가진 뛰어난 장수였다. 그는 17세에 무과에 급제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스물일곱에 병조판서에 오르기도 했다. 남이 장군은 귀신들도 무서워할 정도로 용력과 기상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나중에는 유자광의 무고로 역모로 몰려 죽게 된 장군은 무속에서 신으로 모시기도 한다.

    세조는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면서 북방을 통제하기 위해 현지 출신의 수령을 줄이고 호패법을 강화해 변방 백성들의 이주를 제한했다. 함길도 출신으로 회령부사를 지낸 이시애는 현지 양반과 상인 계급들을 포섭해 1467년 난을 일으켰는데, 남이는 토벌군에 가담해 용맹을 떨쳤다. 그후 서북변에 여진족이 출몰하자 남이는 정벌군에 참여해 여진족의 우두머리를 죽이는 큰 공을 세웠다. 그 당시에 쓴 시가 ‘북정시작’(北征時作, 북방을 정벌할 때 지음)이다.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 바위는 칼 갈아 없애고



    豆滿江流飮馬無(두만강류음마무) 두만강 흐르는 물 말 먹여 없애네.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남아로 스물에 나라 평정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겠는가?

    남이는 이 시를 지어 자신의 포부를 드러내었지만, 이 시로 인해 자신이 화를 당하기도 했다. 일찍이 맹자는 천하의 넓은 곳에 거처하고(仁), 천하의 바른 곳에 서고(禮), 천하의 큰 도를 실천해(義),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그 도를 함께하고, 뜻을 얻지 못해도 홀로 자신의 도를 실천하는 인물을 대장부라 했다.

    야사(野史)에 의하면 유자광이 역모를 고변할 때 이 시의 승구에 나오는 ‘미평국(未平國)’의 ‘평(平)’ 자를 ‘득(得)’자로 고쳐 모함했다고 한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 이 시를 실으면서 ‘그 말뜻이 발호(跋扈)해 평온한 기상이 없으니 화를 면하기가 어려웠다’라고 평했다. ‘발호’란 큰 물고기가 통발을 뛰어넘는다는 뜻이니, 아랫사람이 권력을 휘둘러 윗사람을 벌하는 것을 일컫는다. 여진족을 평정한 뒤 남이는 공조판서에 오르게 됐고, 한 달 뒤에는 병조판서에 발탁됐다. 세조가 승하한 뒤 예종이 즉위하면서 훈구대신들이 득세했고, 훈구대신들의 견제로 병조판서에서 겸사복장으로 좌천됐다. 그 무렵 숙직을 서던 날 밤에 혜성이 나타나자 남이는 ‘혜성은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다’라는 말을 하게 됐고, 이 말을 들은 유자광이 남이가 역모를 꾀한다고 고변해 저자에서 죽게 됐다.

    1818년 순조 때 남이의 후손 남공철의 주청으로 남이는 명예를 회복해 충무라는 시호를 받았다.

    변종현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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