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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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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존명사상과 막말정치- 허승도(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19-05-27 20: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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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중기 대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경호(景浩)는 동일인이다. 퇴계는 이황의 호(號)고 경호는 자(字)다. 그의 초명은 서홍(瑞鴻)이고 자는 계호(季浩)였으나 뒤에 경호로 바꿨다. 호는 지산(芝山), 퇴계(退溪), 도옹(陶翁), 퇴도(退陶), 청량산인(淸凉山人) 등 5개나 된다. 시호(諡號)는 문순(文純)이다. 한자문화권에 있는 나라 옛 사람들은 이름 외에 퇴계 선생과 같이 호와 자를 갖고 있었다.

    ▼자는 관례를 올려 성인이 되면 집안 어른이 지어 주는 것으로 항렬이 낮지만 연장자인 문중(門中) 사람을 부를 때 많이 사용됐다. 호는 스승이나 친구가 그 사람의 성격이나 특징, 취미, 인생관 등을 반영하여 지어 준 별명으로 볼 수 있다. 시호는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업적을 기려 임금이 내려주는 이름이다. 이름보다 많이 부른 자와 호가 생긴 것은 이름을 신성한 것으로 여겨 타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 존명사상(尊名思想)에서 비롯됐다.

    ▼이름 하나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 우리의 선비문화였다. 말은 곧 그 나라의 문화수준을 보여주고,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낸다. 사람들이 말로 표현하는 것은 모두 그 사람의 성품과 감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과 비속어, 상대방을 헐뜯는 저급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의 정치 수준과 정치인·지도자의 품격이 얼마나 낮은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독일에서는 과거사를 부정하거나 특정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발언(Hate speech), 인종과 민족, 종교 등 특정 그룹에 대한 증오 발언이 모두 처벌 대상이다. 여기다 지난해 9월에는 SNS에 올라온 혐오 발언 게시물을 방치한 기업에는 최대 5000만 유로(667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법으로 명문화했다고 한다. 우리도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막말과 저급한 발언이 더 이상 한국 정치에 발을 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허승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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