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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 50년 마산자유무역지역, 희망 품고 다시 뛰자] (3) 마산자유무역지역을 지키는 기업

반세기 장수기업의 비결은 ‘기술’과 ‘혁신’

  • 기사입력 : 2020-01-15 2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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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들은 희망을 품고 마산으로 왔다. 50억 달러 수출탑이라는 전례 없는 성과와 함께 오일쇼크, IMF 외환위기, 세계금융위기와 같은 고초를 딛고 일어섰다. 사람들은 이들을 ‘수출의 역군’이라 불렀다. 50여년 전 사원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 지금은 경영자의 위치에서 더 높은 곳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마산자유무역지역에는 45년 이상 세계적인 생산기술과 국제 분업 기반을 구축한 10개사가 지역 경제를 선도하는 향토기업으로 남아있다. 2018년 기준 10개 기업은 마산자유무역지역 전체 수출의 약 48%, 고용의 21%를 차지하며 지역 경제 발전의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 회사의 경영자들은 회사 설립 단계부터 발전까지 함께한 사례가 많다.

    반세기 역사만큼이나 기술력도 함께 성장했다. 자유무역지역 내 11개의 글로벌 강소기업들이 ‘히든챔피언’으로 성장해 수출과 고용을 선도하고 있다. 전체 입주 기업 중 기업부설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는 회사가 37곳에 이를 정도로 기술 개발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창설 초기 노동집약 산업 기반들이 주를 이뤘지만, 기업들은 산업 구조 재편이라는 세계적인 변화에 발맞춰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왔다.

    2010년대 항공 촬영한 마산자유무역지역 전경/경남신문DB/
    2010년대 항공 촬영한 마산자유무역지역 전경/경남신문DB/

    마산자유무역지역에는 112개사가 입주해있고, 외국인 투자가 60%에 이를 정도로 집적도가 높다. 1970년 마산수출자유지역을 시작으로 군산, 대불, 동해, 율촌, 울산, 김제 등 자유무역지역이 잇따라 설치됐지만 마산은 현재까지도 고용, 생산액과 수출액, 입주업체 등 각종 지표에서 우위에 있다. 본지는 45년 이상 장수기업, 수출선도기업 가운데 TY모듈코리아(전 한국태양유전), 한국성전, 한국TSK를 소개한다.


    고부가가치 사업 눈 돌려 연구·개발로 경쟁력 확보

    ▲TY모듈코리아

    TY모듈코리아는 마산자유무역지역 창설 50년을 즈음해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남필수(63) 대표이사 회장은 지난해 1월 이 회사의 전신 한국태양유전의 생산부문을 물적 분할해 인수하면서 사명을 TY모듈코리아로 바꿨다. 외국인투자기업을 국내 기업으로 전환한 셈이다.

    남필수 TY모듈코리아 대표이사 회장이 생산 제품인 LED TV 백라이트 구동용 컨버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남필수 TY모듈코리아 대표이사 회장이 생산 제품인 LED TV 백라이트 구동용 컨버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1972년 11월 입주한 한국태양유전은 역내 대표적인 장수기업으로 꼽힌다. 일본 다이요유덴(TAIYO YUDEN)에서 투자한 기업으로 저항, 콘덴서 등 전자부품으로 시작해 TV용 전원, LED조명, 충전기, 태양광 등 모듈 생산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 남 회장은 회사를 인수하면서 기존 거래처와 생산 제품, 종업원 고용 모두 승계해 안정 경영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남 회장은 20대인 1980년 사원으로 입사해 40여년을 근무했다. 직원으로서 기억하는 가장 큰 변화는 1987년에 있었다. 당시 민주화 운동은 노동계로 옮겨갔고 역내 다수 생산공장이 중국, 필리핀 등지로 이전했다. “그때 전국에서 노동권 확보 투쟁이 이어졌고 산업계에서는 최저임금 상승, 근로시간 단축이 최대 화두였어요. 민주화 선언 이후 한해 임금이 20~30% 정도 올랐죠. 더 이상 노동집약적 상품은 생산이 안된다는 결론이 나왔죠.”

    당시 한국태양유전은 고부가가치 상품 제조로 눈을 돌렸다. 소자 등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제품은 중국, 필리핀 등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싼 해외로 생산을 돌리는 대신 한국에서는 기술개발을 통한 제품 개발에 나섰다. 이때부터 코일, 콘덴서 등 ‘소자’를 주로 만들었던 한국태양유전은 복합 상품인 ‘모듈’ 생산기업으로 변화하는 전기를 맞았다. 세계 시장에서 TV 수요가 확대되면서 LED 백라이트, 전원 구동부 인버터 등을 생산해 호황을 누렸다.

    기업부설연구소도 이때 만들어졌다. 1980년대 후반 복합 상품을 개발하면서 인력을 설계, 기술 중심으로 재편했고, 다수의 독자 생산 제품을 시장에 내놨다. 현재 TY모듈코리아는 전동공구, 전기자전거, ESS 등에 들어가는 BMS(Battery Management System), DC to DC 컨버터, FET 스위치 보드, 충전기, LED 인버터 모듈 등을 주력 생산한다.

    남 회장은 역내 기업이 100년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에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정부, 학계, 기술평가기관, 기업의 유기적인 협업을 강조했다. “지난해 일본 수출 규제로 부품, 소재, 장비 국산화가 촉발됐습니다. 당장의 큰 위기는 넘겼지만 기술개발이라는 것은 한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시동을 걸어봐야 소용없습니다. 자유무역지역에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있고, 이들 기업들이 지금도 기술 개발이라는 주제로 끊임없이 토론하고 있습니다. 정부, 학계, 기술평가기관, 기업의 유기적인 협업만이 자유무역지역 기업이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신기술 개발 꾸준히 투자 휴대폰→ 뷰티 사업 확장

    ▲한국성전

    한국성전은 1972년 12월 마산에 자리 잡았다. 일본 호시덴(HOSIDEN)이 투자한 기업으로 과거 휴대폰 키 모듈, 현재는 스마트폰 PBA를 주로 생산한다. 한국성전 하성대(76) 대표이사는 1972년 회사 설립 당시 사원으로 들어와 최고 경영자까지 오르면서 회사 발전을 견인한 인물이다.

    한국성전 하성대 대표이사가 독자 개발한 뷰티 디바이스(마사지기)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전강용 기자/
    한국성전 하성대 대표이사가 독자 개발한 뷰티 디바이스(마사지기)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전강용 기자/

    하 대표는 지난 1987년을 제조와 기술 혁신의 변곡점으로 기억했다. 1987년 민주화 선언 이후 노조 설립 운동이 마산에서 본격화됐다. 한국성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동집약적 산업 구조를 가졌던 한국성전은 임금이 대폭 상승하면서 자유무역지역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게 됐다.

    한국성전은 지리상 가까운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한중 수교 전인 1991년부터 시장조사를 시작했고, 이듬해 중국 청도에 현지 법인을 설립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2007년 중국 천진, 2008년 베트남 하노이에 잇따라 법인을 세웠다.

    “당시로서는 거스를 수 없는 변화였습니다. 임금은 대폭 올랐고, 경쟁력은 예전 같지 않았죠. 우리가 회사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중국 청도에 진출할 때는 국교가 없을 때여서, 자리를 잡는 데 몇 배의 시간과 비용이 들었어요. 결국 해외 법인에 생산 물량을 넘기면서 마산에서는 기술 개발에 집중하며 성장해 나갈 수 있었죠.” 해외 법인 설립 이후 마산은 말 그대로 기술개발의 전진 기지가 됐다. 마산자유무역지역 안에서 신제품을 설계, 개발하고 승인까지 획득하면서 기술 본부 역할을 했다.

    특히 2000년 이후에는 휴대폰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한국성전은 신기술 개발에 과감히 투자했다. 휴대폰 키패드의 백라이트 기술인 EL-SHEET, 도파로 SHEET 등을 국내 최초로 개발에 성공했다. 해당 제품은 삼성전자 휴대폰에 적용되면서 호황을 누렸다. 휴대폰 시장이 스마트폰으로 변경되는 시점에서도 한국성전은 PBA 모듈 등 중요부품을 삼성에 공급하며 기술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18년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한국성전 기업부설연구소에서는 30여명의 연구개발 인력이 회사의 신성장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뷰티 산업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50년 가까이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최근 피부 클렌징 마사지기, 워터필링, 이온 마사지기 등을 출시해 미용기기 시장에서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성전은 미래차 부문을 다음 먹거리로 선정해 꾸준히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하 회장은 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연구 개발 분야의 지원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산자유무역지역 기업들은 IMF, 세계금융위기 등 숱한 어려움을 겪으며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앞으로 100년 기업이 될 수 있는 열쇠는 바로 기술력입니다. 기업은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고 정부와 지자체는 연구개발 세재 혜택 등을 지원해 기술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원자재 국산화’ 중점 추진 ‘신뢰 경영’이 가장 큰 무기

    ▲한국TSK

    1972년 8월 입주한 한국TSK는 일본 하이렉스(HI-LEX) 그룹의 한국 법인이다. 하이렉스는 미국, 중국, 베트남 등 15개국에 해외 법인을 두고 있다. 한국TSK는 하이렉스의 첫 해외 진출 법인으로 큰 상징성을 가진다. 대부분 해외 법인의 이름을 TSK에서 하이렉스로 바꿨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한국TSK’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한국TSK 김형오 이사가 생산 제품인 자동차 시트 케이블을 들어 보이고 있다./전강용 기자/
    한국TSK 김형오 이사가 생산 제품인 자동차 시트 케이블을 들어 보이고 있다./전강용 기자/

    한국TSK는 자동차 시트 케이블, 후드 케이블, 파킹 케이블 등을 주로 생산해 전량 해외에 수출한다. 한국TSK 부품은 특정 자동차 브랜드가 아니라 일본,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다수의 브랜드에 납품하면서 수출액 부분에서도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TSK의 수출액은 2008년 3000만 달러, 2011년 3600만 달러, 2013년 4200만 달러, 2018년 3300만 달러 등이다.

    한국TSK 김형오(50) 이사는 지난 2002년 입사해 경영 전반을 관리하고 있다. 김 이사는 창원산단 자동차 계열 회사의 설계 엔지니어였다. 당시 해외 기업에서 일하고 싶은 의지가 강해 마산자유무역지역으로 왔다. 김 이사가 마산으로 와서 중점적으로 추진한 과제는 원자재 국산화였다. 한국TSK는 케이블 등에 들어가는 코팅제와 각종 부품들을 일본에서 수입해 조달했다. 수입 시 물류비, 수출 통관비 등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국내에서 조달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김 이사는 마산자유무역지역에 들어와 기업들과 원자재 정보를 공유했고, 2000년대 초반부터 원자재를 국산화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70%가량을 국내에서 조달하고 있다.

    한국TSK는 1972년 설립 이후부터 거래처 지불 대금을 줄곧 현금으로만 결제했고, 대금 결제일을 한 번도 넘긴 적이 없다고 한다. 이같은 노력으로 중소기업청의 수·위탁 거래 우수기업으로 두 차례 선정되기도 했다. “경제 위기가 왔을 때도 대금 결제기일을 넘긴 적이 없었어요. 대부분 기업이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어음을 발행했는데 저희는 어려울 때도 100% 현금으로 결제했죠. 이 같은 원칙은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는 하이렉스 본사의 경영 철학이기도 합니다.”

    한국TSK는 2018년 비정규직 노동자 40여명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놓고 내홍을 겪기도 했다. 지금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해 250여명의 직원 모두가 정규직이다.

    한국TSK는 곧 설립 50주년을 맞는다. 김 이사는 회사가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스마트 공장에서 찾고 있다. 현재 스마트 공장 초기 컨설팅 단계로 올해 기본적인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김 이사는 마산자유무역지역의 경쟁력 확보 방안으로 기술 개발을 꼽았다. “중국, 베트남 등에서는 노동 경쟁력을 내세워 큰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이 점점 기술력도 확보하는 추세입니다. 마산에는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외투기업을 적극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내 기업들이 기술 고도화를 이룰 수 있는 직접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박기원 기자 pkw@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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