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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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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남명 선생이 그립다- 송봉구(영산대 인문학 교수)

  • 기사입력 : 2020-10-14 20:3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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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내내 서부경남지역의 유림들이 19세기 말 동학혁명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응을 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이와 관련된 글을 읽고 있었다. 이 과정에 서부경남지역 유림의 역사에서 남명 조식 선생의 위상을 재조명하게 되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선생의 기상을 다시 만나게 되어 기뻤고, 오늘날처럼 답답한 현실에 올곧게 살았던 선생의 삶이 우리에게 희망의 길을 제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19세기 말에 조선은 지배계급의 무능과 타락으로 제대로 된 통치는 불가능했고, 이 틈을 타서 관료들은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에 바빴으며, 백성들은 국가와 관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지 못해 살고 있었다. 이럴 때 백성들의 정신을 번쩍 뜨게 하는 가르침이 있었으니, 그것이 동학이었다. 동학의 가르침은 ‘시천주’ 즉 모든 사람은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귀하고 위대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시에 천대받던 하층민들이 동학의 가르침을 많이 추종하였다. 동학의 공부 과정도 복잡하지 않고 21자 주문만 외우면 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순식간에 전국으로 번져 천대받던 하층민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깨닫고 국가와 관료들에게 자신들의 가치를 알아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런 요청을 들었으면 국가와 관료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백성들을 괴롭힌 사실을 반성하고 들어주면 되는데 반대로 백성들을 권력으로 압박하였다. 압박하면 압박할수록 더욱 튀어오르는 것이 사물의 원리이기 때문에 조선의 백성들은 더욱 단결하여 급기야 동학농민군들이 관군을 물리치고 전주까지 점령하게 되었다. 위기감을 느낀 조정은 청나라에 도움을 청하게 되자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런 경우에 상황파악을 잘하고 임금에게도 올바른 소리를 할줄 알았던 남명 선생같은 분이 있었으면 동학농민군들의 사정도 잘 듣고 임금에게도 바른 길을 제시해서 외국군대가 우리나라를 침범하는 잘못된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으로 정의롭게 살았던 선생이 그립다.

    선생은 1555년 임금이 단성 현감에 부임시키자 자신은 능력이 안된다면서 사직소를 제출하였는데 그 내용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핵심 내용을 보면 ‘낮은 벼슬아치는 아랫자리에서 술과 여색에 빠져 있고 높은 벼슬아치는 윗자리에서 빈둥거리며 뇌물을 받아 재물 불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장육부가 썩어 배가 아픈 것처럼 온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한 사람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임금으로서의 원칙을 세우십시오. 임금에게 원칙이 없으면 나라가 나라답지 못하게 됩니다’이다.

    그 당시 조선의 사정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관료들은 당시 현실에 대해 누구 한 사람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었으며, 임금이 원칙을 지키고 있지 않으니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정도 선생이 말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여당은 국가를 잘 운영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여당에 속한 몇몇 국회의원과 장관들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은 마치 아무 잘못이 없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야당에게 기대를 걸기에는 아직 수준 미달이다. 이전의 야당보다는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믿음이 가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수준 미달인 한국정치인들의 수준을 올려서 우리 국민들이 마음놓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을까? 그것이 큰 숙제이다. 해결 방법은 남명 선생의 경(敬)과 의(義) 수련법을 공부하면 된다.

    송봉구(영산대 인문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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