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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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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선과 악이 모두 스승이라고는 하지만- 김용대(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20-11-04 20:4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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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70년대에 다녔으니 오래된 일이다. 당시만 해도 학생 인권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때였다. 수업 시간에 많이 떠드는 학생이 있으면 선생님이 학생 둘을 불러낸다. 그러고는 서로 뺨을 한 대씩 때리도록 한다. 처음에는 서로가 실실 웃으면서 살살 때리는데 선생님에게 꿀밤 한 대씩 맞고 한 녀석이 강도를 조금만 높이면 그때부터 사정은 확 달라진다. 더 세게, 더 세게, 몇 차례 뺨 때리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나면 이제는 말려야 할 정도로 분위기는 험악해진다.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고 서로가 두 주먹을 쥐고 씩씩거린다. 그 광경을 보면서 어린 나이임에도 저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과 악이 모두 나의 스승(善惡 皆吾師·선악 개오사)이라고, 그때 이미 선현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신 그 선생님은 잘 잊혀지지 않았다.

    인간의 잔인함이란 이미 오래전에 인류가 바로 증명했다. 기독교의 마녀사냥이나,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제국주의 일본의 남경대학살 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오래된 일도 아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평범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특정한 사람만 잔혹한 DNA를 타고나서도 아니다. 한 실험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상대방을 볼 수는 없고 비명만 들리도록 하는 전기고문 실험을 했다. 실험참가자들이 레버를 돌려 전류를 흘리고, 전류가 적게 흐르면 비명이 작게, 전류가 많이 흐르도록 하면 비명이 크게 들리도록 했다. 다만 빨간 선을 넘으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실험참가자들에게 했다. 결과는 실험참가자 대부분이 빨간 선을 넘겼다는 것이다. 물론 비명은 녹음된 것이었지만 이 실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잔혹함이 내재되어 있고, 무엇보다 사람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지 않으면 잔혹함은 더욱 강도를 더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인간이 높은 정신적 성찰과 문화적 업적, 놀라운 과학 문명을 이룩하는 것은 동물들이 가질 수 없는 이성과 신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가능했다. 안정된 사회를 만든 것도 도덕과 법률 제도 등을 통해 통제되고, 사회구성원들이 합의를 할 수 있는 정치적 체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면 나에게 더 큰 화가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초·중학교 때 일과 전기고문 실험이 떠오른 것은 최근 우리 사회, 그중에서도 정치권을 지배하고 있는 말들 때문이다. 새파랗게 날이 선 조선낫으로 풀을 베듯 상대방을 베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듯이 말에 날이 서 있다. 친구의 뺨을 때리듯 내가 맞으면 다음번엔 더 세게 때려야 하는 것처럼 말의 공방이 길어질수록 말의 거침도 더한다. 거칠다 못해 말에 독기까지 서려 있어 몸을 움츠릴 때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어떨 때는 이러한 날 선 공방이 집단 광기의 전조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들 때가 있다. 진보와 보수로 대별되는 양 집단은 마침내 생사를 건 혈투를 앞둔 무리같다. 할 수 있는 말은 모두 쏟아내는 듯하다. 토착 왜구, 공산주의, 독재…. 뜻을 정확하게 안다면 쉽게 쓰면 안 되는 말들이다. 몸서리쳐지는 말들이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말로도 전혀 적절하지 않다. 귀담아 들어야 할 말도 없거니와 왜 저런 말까지 해야 할까 하는 안타까운 일들도 많다.

    문제는 우리가 지킬만하고 꼭 지켜야 하는 보편적 가치마저 희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가치 있게 여기던 자유도, 정의도, 도덕도, 법률도 아량도 없어 보인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럽다면 분명 그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는 아니다. 정치의 요체가 국민을 편안하고 배부르게 만드는 것이라 했는데 정치도 그러해야 한다면 굳이 정치가 필요하냐는 의문이 든다.

    선과 악이 모두 스승이라고는 하나, 국민들은 악보다는 선으로부터 배우고 싶어한다.

    김용대(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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