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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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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여성들이여, 능력을 보여주세요- 신계숙(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 기사입력 : 2021-07-01 20: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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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사회면 주요 뉴스는 법무부 대검 대변인과 서울중앙지검 공보관이 모두 여성이 발탁됐다는 소식이다. 검찰의 중간 간부 인사에서 여성 검사들이 약진했다는 것이다. 남성 지배적인 구조를 보여 온 법무부에서 이런 변화가 있었다니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1980년대 필자가 대학을 졸업한 후 요리사가 되겠다고 중국음식점 주방을 자원해서 들어갔다. 조리사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환영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았어도 들어가서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주방에 들어가는 첫날부터 그들은 텃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주방보조 자리라서 무엇이든 씻고 닦는 일을 해야 하는 나에게 수도꼭지를 만지지 말라는 것이다.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묻자 “어디 여자가 주방엘 들어오느냐. 더욱이 대학을 나온 여자가 왜 남자들의 밥그릇을 빼앗으려고 하느냐”고 했다. 그들은 주방을 남성들만이 누릴 수 있는 벼슬자리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한 과를 대표하는 학회장은 거의 남학생이었다. 어쩌다 여학생이 학회장에 출마하려고 하면 교수님께서 딸이 똑똑한 것은 좋지만 똑똑한 딸로 인하여 아들이 치이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3000년 전 〈시경·소아·사간〉에는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마루에 누이고 옷을 제대로 입히고 장난감을 줘라. 우는 소리가 우렁차면 장차 귀한 사람이 될 것이니 빛나는 홍색 옷을 입혀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게 해야 한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땅바닥에 뉘이고 장난감 대신 깨진 그릇 조각을 갖고 놀게 하여라. 아이가 자라면 복종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술 담그는 것과 밥하는 것을 의무로 여기고 조속히 배우자를 찾아서 시집을 가서 부모님의 근심거리가 되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이미 3000년 전에 규정 지어진 것이다.

    가정에서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큰 일 난다는 말은 또 어디서 온 것인가? 〈맹자·양혜왕상〉에는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왕 노릇 잘하는 방법에 관해 묻는 구절이 나온다. 일명 곡속장이라고도 한다. 왕이 당상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소가 한 마리 지나가고 있었는데 도살장에라도 끌려가는 모습이었다. 왕이 물었다. “저 소는 왜 저렇게 두려움에 떨고 있느냐” 그러자 신하가 “종을 만들 때 여러 조각으로 만들어 각 조각을 모두 잇고 나서 마지막에 소피를 바릅니다. 이 과정을 흔종이라 하는데 저 소를 잡아서 흔종에 사용할 피를 구하려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왕은 “내가 그 소를 보았고 소를 잡으려면 비명을 지를 터인데 그것을 보고 내가 어찌 그 고기를 먹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군자는 주방을 멀리해야 하느니라”라고 하였다. 이 구절이 어떻게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이 나는 일’로 변질이 되어 여성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밥하는 일’을 고유의 업무로 여겨 평생을 그저 숨죽여 살아야 했으니 이 얼마나 국가적인 낭비 아닌가.

    중국이 개혁 개방을 외칠 때 덩샤오핑은 흑묘백묘론을 주창했다. 검은 고양이이든 흰 고양이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말은 다소 진부해 보이지만 곱씹어볼수록 명언이다. 국가는 인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나는 능력 있는 여성들이 세밀한 통찰력과 특유의 직관력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제 역할을 톡톡히 담당해야 한다고 본다. 세상을 바꾸는 작은 시작은 불평등했던 것을 평등하게 바꾸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신계숙(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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