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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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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ON] 부자 氣받기- 삼성·LG·효성 창업주 이야기 ⑫ 부산에서 삼성물산 주식회사 설립

[1부] 또 하나의 가족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⑫ 부산에서 삼성물산 주식회사 설립
모든 걸 앗아간 6·25전쟁… 사업 정리해 대구로 피란

  • 기사입력 : 2021-09-17 07: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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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란에 인천·용산 창고 물품 모두 잃어

    사업 청산하고 직원·가족과 서울 떠나

    대구서 마련한 창업자금 3억원으로

    1951년 부산에 삼성물산 주식회사 설립

    고철 수출·설탕 수입해 화려하게 재기

    이병철의 기업경영 역사에 조선양조 주식회사는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삼성브랜드 가치는 지구촌 기업 중 가장 상위권이다. 구글, 애플과 비교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세계적인 기업이 됐다. 이러한 성장의 시작, 즉 삼성의 씨앗은 대구에서 경영한 조선양조라고 평가를 하는 경제학자들의 의견도 있다.

    조선양조의 대표 생산품은 고급 청주 월계관을 비롯 삼성 소주, 삼성 위스키, 삼성 포도주 등 8종류로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요정 명월관, 국일관 등에 전용 주류로 납품했다. 동아일보, 경향신문에 배너광고를 할 정도로 판매도 잘 되었고 인지도도 높았다. 기업이 성장하자 이병철은 더 큰 사업을 위해 서울로 진출했다.

    조선양조 주식회사 인수 후 공장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병철은 더블 재킷에 줄을 세운 바지를 착용, ‘마카오신사’로 불리는 패셔니스트였다./호암자전/
    조선양조 주식회사 인수 후 공장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병철은 더블 재킷에 줄을 세운 바지를 착용, ‘마카오신사’로 불리는 패셔니스트였다./호암자전/

    # 서울서 겪은 6·25전쟁, 대구로 피란 가다

    6·25전쟁으로 인한 우리 국민의 인적, 물적 피해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이병철의 서울 삼성물산공사도 전쟁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전란의 와중에 삼성물산공사의 주요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인천과 용산에 보관한 수입품 창고의 물품은 티끌하나 남겨두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전쟁 중이라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이병철은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1950년 12월, 이병철은 전쟁으로 인한 심적, 육체적 고통으로 더 이상 서울 생활하기가 힘든 상황에서 삼성물산공사 전 재산을 정리하고 직원과 가족들을 데리고 대구로 피란을 갔다.

    당시 대구에는 이병철이 설립하거나 인수해 경영하던 삼성상회를 비롯 청주를 생산하는 조선양조 주식회사, 그리고 술 재료 효모를 만드는 조선효모 주식회사를 가지고 있었다. 이병철이 피란을 간 대구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서울로 가면서 임직원에게 물려준 조선양조 공장이었다.

    이곳 양조장을 관리 운영하던 임직원을 만나 전쟁터의 서울 삼성물산공사 근황과 피란 과정, 대구 사업장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어 실의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이병철에게 조선 양조장을 관리하던 경영진이 찾아와 3억원을 내놓았다.

    1947년 12월 2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조선양조 대표 생산품인 월계관 광고. 명월관, 국일관 등 서울 유명 요정에 납품한다는 내용이 실렸다./이래호/
    1947년 12월 25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조선양조 대표 생산품인 월계관 광고. 명월관, 국일관 등 서울 유명 요정에 납품한다는 내용이 실렸다./이래호/

    # 3억원의 창업자금

    이병철은 3억원의 종잣돈이 생기자 1951년 부산에 ‘삼성물산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이때 3억원의 사업자금에 관한 기존 전해오는 두 가지 내용에 새로운 자료도 찾게 되어 세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호암자전 회고록 내용이다. 이병철이 대구로 피란을 와 조선양조장을 찾아간 후 경영진과 나누었던 대화이다.

    “사장님, 1947년 이 양조장을 맡기고 서울로 가신 후 저희들이 최선을 다하여 경영했습니다. 3억원 정도의 이익금이 비축되어 있습니다. 이 돈은 사장님 돈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돈을 종잣돈으로 다시 한번 사업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호암재단에 기록된 내용이다. 호암자전의 내용과 조금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6·25 전쟁 통에 서울 삼성물산공사는 보세창고에 쌓아두었던 수입 물품을 도난 당해 큰 곤경에 처했다. 그러나 대구 조선양조는 몰려든 피란민으로 인해 판매가 더 잘 되었다. 그러나 국군이 지키던 대구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자 직원들은 그동안 번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궤짝에 3억원가량의 돈을 담고 서류뭉치로 위장해 부산의 지인에게 맡기기 위해 자동차에 실어 보냈다. 도중에 돈 궤짝이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운전기사가 돌아와 그 과정을 설명하였다. 운전기사는 부산으로 이동 중 미군에 강제 징집되자 길가의 정미소에 돈 궤짝을 감춰두었다. 현장을 찾아가 불타버린 정미소 잿더미 속에서 궤짝을 찾아 살펴보니 돈은 그대로 있었다. 이병철이 이 돈을 종잣돈으로 부산에서 삼성물산 주식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

    1951년 부산에 설립한 삼성물산 주식회사./호암재단/
    1951년 부산에 설립한 삼성물산 주식회사./호암재단/

    # 3억원의 창업자금, 또 다른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의 자료는 이병철의 매형 허순구 회고록에 기록된 내용의 인용이다. “6·25전쟁으로 인민군이 경북 왜관까지 왔을 때 허순구는 아들 병기(장남)와 병천(차남)을 데리고 조선양조장이 보유한 현금을 물엿 양철통 20여개에 나누어 담았다. 그리고 밀봉 처리한 후 방부처리하고 안채 마루 밑에 묻어 두었다. 1950년 12월 대구로 피란 내려온 이병철은 생질 허병기 집에 임시 거주하였다. 허병기는 마루 밑에 숨겨 두었던 돈을 찾아내어 외삼촌 이병철에게 사업 자금으로 제공했다.”

    # 부산 국제시장에 수입 설탕 판매

    이병철은 마산에서 조홍제를 만나 부산에 새로 설립한 삼성물산 주식회사에서 함께 일하기를 요청했고, 두 사람의 사업 인연은 다시 연결되었다. 삼성물산 주식회사 첫 사업 품목은 고철을 수집해 일본에 수출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으로 패망 후 한창 복구사업이 진행 중이라 고철과 쇠붙이 등을 많이 수입하고 있었다. 일본에 고철을 수출하고 받은 돈으로 홍콩에서 설탕과 비료를 수입해 국내에 판매했다. 전쟁 중이라 물자 부족으로 수입품은 판매가 잘 되었다.

    당시 부산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은 국제시장이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일본인이 남긴 물건, 해외 동포들이 귀국하면서 가져온 물건, 무역물품, 밀수물품 등을 판매하기 위해 하나둘 모여 좌판을 벌인 것이 상설시장으로 변모되었다.

    1950년 이후에는 해외 물자들이 부산항을 통해 반입되고, 군용물자를 비롯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까지 취급하여 깡통시장이라는 별칭도 갖게 되었다. 삼성물산에서 수입한 설탕도 이곳 시장을 통해 전국으로 공급됐다. 당시 삼성의 수입 설탕을 전담해 도매 판매를 한 사람이 ‘설탕 왕’으로 불리는 이양구이다. 이양구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설탕과 밀가루 등을 전문으로 하는 식품 유통 사장으로, 훗날 초코파이로 유명한 동양제과(오리온제과)를 설립하고 동양그룹까지 성장시켰다.

    # 제조업을 하자, 제일제당 설립

    전쟁이 끝나지 않은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고철 수출과 홍콩에서 수입한 설탕의 국내 판매 호황으로 삼성물산은 또 다시 한국을 대표하는 무역회사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병철은 이 성장을 즐겁게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민이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제품을 수입에 의존한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해결이 되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외국의 물건을 사는 것이고, 우리가 외국 제품을 소비하는 외화 낭비이다. 국가와 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사업을 하자. 우리도 수출하거나 우리 손으로 우리 국민이 사용할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이 사는 유일한 길이다.” 이병철은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고 최종 결심을 한다. 제조업을 하자!

    이병철의 한마디= 어떤 일이 발생하면 가슴 아프더라도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더 빨리 잊어버릴수록 더 빨리 가능성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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