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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고향- 차주목(국민의힘 수석전문위원)

  • 기사입력 : 2021-11-30 20: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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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향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첫째가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두 번째는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 세 번째가 마음속에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한 사람의 고향이 세 가지 정의를 모두 충족한다면 정말 상상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62년부터 경제개발정책을 펼쳐왔고, 1970년대부터는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이 전국을 강타했다. 그러한 영향으로 대다수 국민들은 농업에 종사하다 직장을 구해 부득이하게 고향을 떠나 도회지로 이주했던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있다. 우리 창원시도 인근 함안군, 의령군, 고성군, 김해시, 밀양시 등 인근 지역에서 이주해온 분들이 많다.

    필자의 아버지도 직장을 찾아 함안을 떠나 창원에 정착하였다. 필자도 본적지는 함안군이지만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창원에서 다녔기 때문에 창원사람이다. 그런데 고향이 어디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국어사전 두 번째 정의에 따르면 나의 고향은 함안군이기 때문이다. 창원에도 경남의 시·군별 향우모임이 활성화된 곳이 많이 있다. 특히 서울이나 부산 등 타 지역에서의 고향 모임은 향수를 공유하고 친근감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

    어릴 때 불렀던 ‘고향의 봄’ 동요가 우리 창원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뿌듯해했던 기억이 있다.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 창작터가 마산합포구 오동동 72번지 골목 하숙방이라는 사실이 10여 년 전에 확인되었다. 이원수 선생은 양산 출신으로 창원 소답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현 성호초등학교와 용마고등학교를 다녔다. 아동 문학계의 거성으로 항일문학모임인 함안독서회 활동으로 옥고를 치르는 등 민족운동에 참여했지만, 일제 말기 내선일체에 관한 글을 기고하여 친일파로 몰려 친일 사전에 등재되었다. 그 식민지 시대를 살아야 했던 선배들의 신산했던 삶을 치열한 역사적 재평가도 없이 이념의 잣대로 정한 획일적 기준만으로 친일, 반일로 구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친일파 문제는 반성과 교훈의 의미로 나아가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을 막자는 것인데, 정치적인 측면에서 과도하게 부풀려져 비난을 받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지금도 여당의 당 대표가 야당 대통령 후보를 친일 프레임으로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정치적 만행을 목도하고 있다. 언제까지 과거에만 얽매여 있을 것인가?

    나는 기분이 좋으면 동요 고향의 봄을 즐겨 부른다. 내 어릴 적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서 부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차주목(국민의힘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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