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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05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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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용어’로 세상 읽기- 허충호(논설실장)

  • 기사입력 : 2022-02-16 20:4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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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 흐름을 보여주는 많은 것 중 하나는 용어(用語)다. 용어는 실체를 투영하는 거울이다. 그간 많은 용어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고 일부는 이미 잊혔다. 용어는 말 그대로 일정 분야에서 쓰이는 말이지만 특정 분야에 국한돼 쓰이는 전문 용어가 현실에 널리 통용된다면 일반인들의 삶은 대개 팍팍해진다는 게 역사적 교훈이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사태가 일어났을 당시, 모두에게 생경한 모라토리움(moratorium·지불유예)이 지면을 장식했다. ‘국가부도’로 해석된 이 말은 많은 국민들에게 좌절과 고통, 그리고 극단적 선택이라는 생채기를 남겼다. 학교에서 배웠던 ‘국제통화기금(IMF)’이 그토록 큰 힘을 가진 기구인 것도 새삼 실감했다. 당시 창원국가산업단지를 출입했던 필자로서는 그 위력을 현장에서 체감했던 기억이 난다. 흔하지 않은 용어의 무게를 실감했다고 할까. 글로벌에서 파생된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을 두고 ‘세계화’로 번역해야 한다거나 ‘세방화’로 해야 한다는 논란까지 빚는 어지러운 시간 속에서 ‘글로벌’은 슬그머니 사회 곳곳에 자리 잡았다. 창원국가산업단지 내 기업들의 이름을 죄다 영어식으로 바꾸는 데도 큰 역할도 했다. 한자 위주로 구성됐던 기업명이 영어식으로 변화한 것은 분명 글로벌이라는 새로운 용어의 등장이 큰 동기가 됐다. 여기서 묻는다. 그래서 우리는 과연 글로벌 해졌나.

    용어는 자연스레 숫자와 연결된다. 최근의 전문용어는 ‘팬데믹(pandemic)’과 ‘부스터 샷(booster shot)’, ‘엔데믹(endemic)’, QR코드, 안심콜이다. IMF 사태에 이어 등장한 이들은 자연스레 숫자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다. 하나의 사건과 연관된 숫자가 신문지상에 이처럼 중계되 듯 실린 적이 있었던지 궁금하다. 그 숫자의 힘은 실로 강력해서 그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게 수의 발견이라고 하지만 그 수가 주는 고통이 너무 크다. 더 큰 문제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 숫자를 마치 아침인사처럼 맞아야 할지 모를 불확실성이다. 보이지 않는 것과의 전쟁에서 확실성을 추론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수는 있지만 그래도 묻고는 싶다.

    정치권에서는 ‘리스크(risk)’니 ‘보복’이니 하는 말들이 오간다. 역대급 비호감이라는 관전평에 무게를 실어주는 용어들이다. 그간 대선에서 보기 드물었던 이런 단어들과, 생각지도 않았던 뜻밖의 조연들이 등장해 마치 주연처럼 주목받는 현실도 놀랍다. 주연과 조연의 역할이 서로 번갈아 부각되는 이런 장면에 많은 이들이 황망과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는다. 사실 이번 대선은 시작보다 결말 이후의 과정에 더 관심이 간다. 확실한 결론을 내지 않고 묘한 여운을 남긴 채로 ‘디엔드(The End)’를 띄우는 스릴러 영화처럼 말이다. 그게 벌써부터 궁금하지만 예단은 접는다.

    범위를 축소해 한반도의 동남권에 또 다른 용어가 등장했다. ‘메가시티(mega city)’다. 핵심도시를 중심으로 일일 생활이 가능하도록 기능적으로 연결된 대도시권을 일컫는다. 불과 몇 년 전 이 용어가 등장했을 당시 도민들의 거의 대부분은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몰랐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에는 ‘글로벌 비즈니스’나 ‘특별지방자치단체’라는 또 다른 전문 용어도 수반된다. 이미 일본이나 프랑스, 영국 등이 시행해본 것들이니 전문가들에게는 평이한 용어겠지만 많은 이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용어들이다. 앞으로 한동안 동남권을 휩쓸 그 용어에 주목하는 것은 생소한 용어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실효성이다. 3개의 광역지자체에 또 다른 특별지자체가 가미되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어색함과 이해관계에 얽힌 갈등의 진행 상황이다. 사회는 잘 짜인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게 이상적이라고 하지만 시스템에 또 다른 시스템이 존재하는 이런 구조가 과연 갈등을 잘 이겨내고 당초 추구하는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그래도 어째 아직은 낯설다.

    허충호(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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